고전문학 시간에 한번쯤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고대 수필 ‘규중칠우쟁론기’를 재구성한 그림책이라니 잘 알려진 옛이야기를 전래동화로 옮겨놓은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사실 신변잡기의 의인화 정도로 제목만 달달 외운 고수필이 그저 입에만 맴돌게 남아있을 뿐이라서 칠우(七友)의 확실한 존재도 기억에 없었는데 그림책을 읽고 보니 이제는 결코 잊어버릴 일이 없을 듯하다. 게다가 자 부인, 가위 색시, 바늘 각시, 홍실 각시, 인두 낭자, 다리미 소저, 골무 할미..일곱 동무의 이름 또한 어찌나 정겹던지 그림책의 놀라운 발견이라 살짝 흥분했을 정도다.
그 내용은 익히 알려진 대로 바느질을 즐기는 빨강 두건 아씨의 손끝을 떠나지 않는 일곱 동무의 이야기다. 낮잠이 든 아씨를 옆에 두고 일곱 동무의 자랑이 이어진다. 옷감의 좁고 넓음, 길고 짧음을 재는 자 부인이 자신이 바느질의 최고 공로자라고 자랑하니 잘 재어본들 자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냐며 가위 색시가 나선다. 그러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며 바늘 각시가 따끔한 한 마디를 하고 뒤이어 홍실 각시는 실없는 바늘이 일을 잘도 하겠다며 쏘아붙인다. 이들의 다툼을 가소롭게 지켜보던 골무 할미는 아씨 손부리 다칠세라 밤낮 시중드는 본인의 공로를 이야기하고 인두 낭자와 다리미 소저는 모양을 다듬어주고 구겨진 곳을 펴서 옷맵시를 살려주는 본인들의 자랑도 보탠다. 일곱 동무 다투는 소리에 잠이 깬 아씨는 너희가 아무리 잘해도 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시끄럽게 단잠을 깨우냐며 화를 낸다. 하지만 결국 나쁜 꿈으로 인해 아씨와 일곱 동무는 누구 하나라도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서로 화해를 하며 예전처럼 즐겁게 일을 하게 된다.
옛이야기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온 작가의 역량이 그대로 담겨져서 그 맛을 더하는 빼어난 그림책이다. 아씨방 방안의 문갑을 비롯한 소품들이며 창호지 바른 문창살, 댓돌 위의 고무신…이런 것들을 아주 정겹게 그려낸 솜씨며 그림 상단에 항상 등장해서 일곱 동무의 잘난 척 경연대회 사이사이에 적나라하게 표정변화를 보여주는 아씨의 모습은 일곱 동무가 늘어놓는 자랑보다 더 재미를 더한다. 아씨 체면에 입을 벌리고 자다가 하품을 쩌~억 하기도 하고 시끄러운 소리에 한쪽 눈만 실눈을 뜨고 보다가 결국 단잠에서 깨어나 화를 내고 돌아눕는 모습까지 작가가 별책부록처럼 살짝 숨겨둔 보너스 같다. 앞표지와 뒤표지도 일곱 동무가 아씨방에서 밖을 내다보는 장면을 안과 밖에서 바라본 시선으로 꾸며져 있다. 요즘 그림책은 앞표지와 뒤표지도 빼놓으면 서운할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 쓰는 추세다.
바느질에 꼭 필요한 일곱 동무들이 전하는 이야기 또한 정성껏 만들어낸 옷가지처럼 반듯하다. 아무리 저 혼자 잘났더라도 함께 어우러져야 멋진 작업을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 빛나는 보석으로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안다. 그래서 자신을 빛나게 하기 위한 수고와 정성을 쉽게 무시하고 더불어 타인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고 누구에게나 군림하려고만 들고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른다. 제 아무리 잘났다 해도 세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혼자의 힘으로만 이뤄낼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일곱 동무들이 이야기 하고 있다.
고전문학인 ‘규중칠우쟁론기’의 재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살려낸 작가가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와 주길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시험을 위해 제목만 달달 외우기에 급급했던 많은 고전문학들이 이런 작업을 거쳐서 쉽고 재미있게 다가온다면 날름 집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매력적인 소재를 찾아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