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어린 나이의 아이한테 글자없는 그림책을 읽어줄 때에는 꼭 완결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에 머리가 아팠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림을 보는 그 자체를 부담없이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그래서 저 또한 그럼 부담을 떨쳐버리고 그림에 집중하게 되었지요.
그런 그림책을 여러번 보다 보니 매번 새로운 이야깃 거리가 생각나고 그림에서도 새로이 느껴지는 점이 와닿게 되었습니다.
글자 없는 그림책은 늘 어렵지만 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수지 님의 “거울 속으로” 역시 글자 없는 그림책이예요.
특히 이 책은 군더더기 없이 한 소녀와 거울 속 상상을 목탄 크로키처럼 그려낸 것이라 그림과 그 안의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 수가 있었답니다.
소녀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웅크리고 있어요. 뭔가 괴로운 일이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외로운 느낌에 애처로운 생각이 듭니다.
그 때 소녀는 자기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소녀를 보고 흠칫 놀라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인 것 같아요.
어느덧 적응하여 즐겁게 춤도 추고 웃습니다.
나비와 같은 데칼코마니 그림은 불꽃놀이처럼 변했다가 거울 속의 소녀와 실제 소녀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
책 속에서 사라집니다. 책 가운데 하얀 빈 페이지는 굉장히 이색적이네요!
다시 나타난 소녀들은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네요.
닯은 얼굴이지만 하는 행동은 다르네요.
어느 순간 자신과 다른 춤을 추고 있는 거울 속 나에게 화가 나서 소녀는 거울을 밀치고 맙니다.
후회도 잠시..거울은 그만 깨어져 버리고 소녀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거울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떨까요..
갓 태어난 아기도 거울을 몇 번 보여주면 그것이 자신의 모습임을 알고 빙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거울은 사람의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임에 틀림없어요.
거울을 이용해 어릴 적 많은 놀이를 해보셨을 거예요.
이 책도 그러한 거울 놀이 판타지라고 할 수 있네요.
주인공만을 부각시키는 그림, 움직임이 살아 있는 그림의 선..
책 속에 빠져 소녀처럼 무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그림과 주제인 것 같아요.
길쭉한 책의 판형도 거울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