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한 평생 동안 간직할 귀한 경험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생님이 정말 좋은 선생님일까요? 세상에 여러 가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교사란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도 가지각색이지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선생님들 중에서도 공부를 잘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 말과 행동이 희극 배우처럼 재미있는 선생님, 젊고 예쁜 선생님 등 요즘 아이들이 좋아 하는 선생님의 유형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문석이도 그런 선생님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3학년 3반의 담임이 된 김영필 선생님은 문석이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할아버지 선생님이셨지요. 노인에 대한 경험이 적은 아이에게 할아버지 선생님의 얼굴과 손에 난 검버섯과 축 늘어진 목주름은 낯설기만 합니다. 게다가 2학년이 된 동생은 젊고 예쁜 선생님을 만나 매일 자랑을 하니 문석이는 더욱 부럽고 배가 아프지요. 잔뜩 심통이 난 문석이는 선생님의 검버섯이 달마시안 같다며 달마시안 선생님이라고 불러 버립니다. 선생님에게 크게 실망했으니 선생님이 가꾸어 주신 텃밭에 꽂혀 있는 자기 이름표 팻말도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멀쩡한 팻말을 괜히 발로 차며 심통을 부리는 철부지 문석이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외모처럼 눈에 보이는 얕은 단서만 가지고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는 본을 보인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는 나이 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연륜과 깊은 경험이 있지요. 교사로서 수십 년 동안 아이들 앞에 서온 달마시안 선생님은 오랜 교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넘볼 수 없는 노하우가 있고요. 더구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참 자라나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달마시안 선생님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옛날 이야기 형식으로 자신의 젊은 교사 시절을 풀어 놓습니다.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를 그 당사자인 할아버지 선생님에게 직접 전해 듣는 아이들은 얼마나 축복 받은 걸까요. 수박 서리, 쥐꼬리 모아 오기 같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여러 가지 생활 풍습을 교과서가 아니라 생생한 경험담으로 들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쌓아온 경험담을 말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점은 달마시안 선생님이 아이들을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에게 쏟아 붙는 사랑과 관심이었습니다. 첫 수업 날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주기 위해서 선생님은 얼마나 열심히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외우셨을까요? 아이들의 작고 보드라운 손바닥 위에 ‘꼭 너희들 같은 싹을 피울’ 작은 씨앗을 하나하나 놓아 주며 새 학년을 시작하는 할아버지 선생님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달마시안 선생님은 작은 식물들이 제각기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돌보아 주고 지켜주는 마음으로 평생 교직에 머물러 온 게 아닐까요. 그렇게 열심히 키워낸 작은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선생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힘들 때 잠시 기댈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었으니까요.
정말로 초등학교 3학년 개구쟁이 남자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일러스트는 작품과 사실적으로 어우러져서 화자의 이야기에 더욱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문석이가 발로 차서 비뚜름하게 해 놓은 팻말을 바로 세워 두는 달마시안 선생님의 모습은 소설에 아주 직접적으로 행동 서술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림으로 인해 아이들이 보다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과 그림의 탁월한 조화가 아이의 심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동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