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존 버닝햄의 책을 접한건 큰 아이가 유치원 시절이었다. 유치원에서 권장도서로 선정된 <마법침대>라는 책이었는데 아이들만의 상상의 세계가 간단한 문구만으로도 재미나게 표현된 책이었다. 그리고 얼마후 이 유명한 <지각대장 존>을 보게 되었는데 이 책도 작가의 재미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후로 보았던 검피아저씨 시리즈도 그렇고 역시 존 버닝햄의 작품은 간결하지만 순수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담겨 있어 아이들이 열광하는것 같다.
우리의 주인공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가 학교를 가기위해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가 불쑥 나와 책가방을 덥썩 무는 믿지 못할 사건이 발생한다. 책가방을 놓아주지 않는 악어에게 장갑을 던져주고 가방을 뺏어 학교로 향하지만 존은 지각을 하고만다.
존은 선생님께 지각한 이유를 설명하지만 검은옷의 권위적인 선생님은 존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뿐더러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라는 반성문을 300번이나 쓰라고 한다. 책의 앞뒤표지에 써있는 꾹꾹 눌러쓴 낙서 같은 글씨가 바로 존의 그 반성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존은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사자에게 바지를 물더 뜯기거나, 강에서 산더미 같은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는 믿지 못할 사건들 때문에 지각을 하게된다. 선생님은 그때마다 존의 말을 거짓말로 치부해버리고 반성문의 강도를 400번, 500번으로 높이며 체벌을 가한다.
하지만 체벌이 가해진다고 아이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존이 왜 장갑을 잃어버렸는지, 옷이 왜 뜯겼는지, 왜 흠뻑 젖어서 학교에 왔는지에 대해 거짓말이라며 체벌을 가하기 보다는 좀더 귀기울여 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그것이 거짓말 이었다면 존이 그런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를 들어주며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던가, 만일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위험한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게 정말 좋은 선생님의 모습이 아닐런지…
하지만 존의 선생님은 그런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보다. 그림만으로도 작고 나약해 보이는 존과 그에 비해 엄청 크게 그려진 선생님의 모습은 “넌 내말을 들어야만해!”하며 마법을 거는 마법사같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모습은 바로 일반적인 우리 어른들의 모습인것 같아 뜨끔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얼토당토 않은 것을 요구할때나 은근슬쩍 거짓을 얘기할때 그 이유를 듣고 마음을 헤아려 주기 보다는 어른들의 잣대에 맞추어 행동해 줄것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작가도 이 책을 통해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의 심적 갈등에 대해 어른들의 반성을 부추기고 있는듯 하다.^^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여 주라고~~
그런데 이 책의 끝이 여기까지가 아니다. 마지막에 아주 통쾌한 반전이 있다. 어느날 등교길에 아무런 문제없이 제 시간에 학교에 도착한 존과는 달리 선생님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털복숭이 고릴라에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구조를 요청하는 선생님께 존은 선생님이 존에게 했던것처럼 말한다.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그러고나서 존은 어떻게 했을까? 우리 아이는 존을 믿어주지 않는 선생님 때문에 화가 나긴 하지만 선생님을 구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통쾌한 마음에 모른체하고 가버렸을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