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공사장 옆 쪽 어두운 그늘가에서 야채를 팔고 계시던 할머니를 발견했을때,살 돈도 없고 엄마께 쓴소리 들을거 뻔해 다가서진 못했고, 초록불로 바뀌고 깜빡 거리는 신호도 인지하고 있지만 차마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날.
책을 읽는데 문득 그 순간이 떠올랐다.책과 아무 연관 없어보이는 일이기는 하지만 굳이 하나 끄집어낸다면 할머니의 외로움과 피그나티씨의 외로움, 아닐까싶다.이 책에서의 외롭다는것은 멀리 떨어져있다는 거리감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곁에 없다는 허전함 때문이었을것이라고 생각이든다.피그나티씨는 주인공들이 전화를 걸기 전에도 충분히 자기 생활을 잘 꾸려나가고 있었을것이다.아내가 세상을 떠났을때도 돼지들을 방 안 한켠에 모아두거나,아내의 옷과 장식들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등..아내에 대한 외로움과 슬픔은 가지고 있었겠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장난전화로 피그나티씨의 생활 방식에 끼어든 존과 로레인은 각각 다른 생김새로 피그나티씨를 위로해주는 돼지들도 아니었고,떠난 아내의 남겨진 추억도 아니었다.존과 로레인은 아내의 자리를 대신해줄수 있는 인간이었고,허전함을 채워줄 피느나티씨에게 관심을 주는 대상이었다.장난 전화를 걸고 피그나티씨가 신이 나서 전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할때,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들었다.피그나티씨는 관심이 필요했었고,슬픔을 나눠가질 친구가 필요했을것이다.존과 로레인도 마찬가지였다.존은 가족에게는 형과 비교대며 무시당하는 처지로 학교에서는 짖궂은 장난을 하며 주동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관심을 받고 싶었던것이고,로레인은 남자에대한 확고한 개념을 가진 엄마때문에 눈치를 살피고,친구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했고,관심을 받고 싶었던것이다.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피그나티씨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것을 깨달았지만 가장 공감되는 것은 청소년들인 존과 로레인이 피그나티씨의 죽음으로써 알게되는 세상에대한 회의와 허무함이었다.인생 처음으로 곁에있던 소중한 누군가가 내곁을 떠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소설이었다.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책이었다.청소년들이 읽으면 느끼는것이 많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