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외로움을 타는 동물이다.
고독을 즐기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교류가 없으면 우울해한다.
집단에 속해 있고 싶어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하며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공감하기를 원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비롯된 만남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친구들은 세상을 떠나거나 연락이 되지않고, 아내는 숨을 거두어 버린
노년의 남자 ‘피그맨’.
장난끼 넘치고 엉뚱한 미소년 ‘존’과 소설가 지망생인 소녀 ‘로레인’.
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전혀 반대의 성향을 띤 것 같이 보인다.
활기 넘치고 친구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교류하며 인생의 스타트를 끊고 있는
십대 존과 로레인,
푸근하고 다정하지만 이제는 고독하게 삶을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는 ‘피그맨’.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명 모두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있다’.
특이한 성격, 튀는 외모, 원활하지 않은 가족관계로 인해 속해있지 못하고 소외된 것이다.
그리고 서로 이해해줄 사람을 원하고 있다.
사춘기에 직면한 청소년이라면 이러한 감정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했다.
많고 많은 친구들 사이에 놓여있으면서 정작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해
느끼는 외로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족들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
작가는 이러한 감정을 간접적으로 해소해준다.
우리의 모습인 존과 로레인이 피그맨을 만나게 되는 사건을 통해서.
이들의 첫 만남은 로레인과 존의 장난으로부터 시작된다.
피그맨은 오랜만에 자신에게 찾아온 손님들에게 애정을 보이고
그들과 계속 같이 지내고자 한다.
이로써 피그맨과 존, 로레인은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어간다.
아이들은 피그맨에게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잊혀져가던 사람의 온기, 즐거운 대화를 되돌려주는 매개체이다.
피그맨은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청소년들이 바래오던 ‘어른상’이다.
“내가 피그맨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쓸데없이 우리 앞세어 ‘꽃미남’이나 ‘짱’
‘완소’ 따위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서였다. 그는 우리를 ‘유쾌하다’고 표현했다.
그런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지 않는 대범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 본문 中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깜짝 깜짝 놀랐던 부분은 작가가 놀라울 정도로
우리 청소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 대목과 같은 부분을 통해 우리가 어른들에게 하고싶은 말을
어른인 작가가 대신 말해주는 것은 굉장히 묘한 느낌이다.
소위 ‘불량 소년’인 존이 피그맨을 만나 의젓하게 변하는 과정도
부자연스럼게 감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다.
읽을 때 작가가 특별히 교훈을 주려고 하는 느낌은 받지 않지만
글 속에는 사랑과 우정을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이 잔잔하게 녹아있다.
피그맨에서 다루고 있는 우정이야기는 굉장히 특별하면서도
친숙하다.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지진 않지만 모두가 한번쯤은 상상하고
바라는 ‘진정한 교류’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왠지 외롭게 느껴진다면,
고독함에 익숙해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십대이든 어른이던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
십대에게는 길을 만들어주고 어른에게는 활기찼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