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의 전래동화 시리즈중 9번째 책인 ‘단물고개’를 만났다. ‘단물고개’는 그 동안 천안지역에 내려오는 전설을 책으로는 처음 소개하는 이야기 인데, 원래 이야기에는 단술이 나오는 데, 아이들의 정서에 맞추어 일상적이고 친근한 단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책은 처음 느낌부터가 특별하다. 진한 코발트색의 파랑에 흰색과 검은 색의 그림이 있고 책 중앙에 나무결 같은 글씨체로 ‘단물고개’가 금장으로 씌어 있다. 그리고 책의 제본이 있는 부분은 자주색 천이 우리 한복의 자주빛 끝동 같은 느낌을 준다. 색감의 조화와 천의 질감이 이 책을 훨씬 고급스럽게 만든다.
우선 그림부터 살펴보자. 다색석판화 방식을 응용한 기법이라고 하는 데, 구성과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색감을 풍부하게 표현하였으며 다소 누런 종이 위에 채색되어 있어 질감도 특이하고 색채도 독특하다. 물의 상징인 파란색, 총각의 욕심과 환상의 세계를 강조하는 주황색, 총각의 순수한 마음과 서민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흰색이 강렬하고도 아름답다.
그리고 구성상 특이했던 점은…보통 책 표지를 넘기면 속지가 나오고 그 다음 장엔 바로 책 제목과, 만든이, 출판사 등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책은 속지 다음에 ‘옛날 옛날 한 옛날 /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헌 누더기 각시 적에 까막까치 말한 적에 / 깊고 깊은 산골에 한 총각이 살고 있었는데….’라는 지문이 전래동화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림과 함께 세 장이나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음 장이 책 제목, 작가, 출판사 등등이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이런 구성이 옛이야기에 더 쉽게 더 깊게 몰입하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고, 작은 행운에도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나무하러 가거나, 장에 갈 때 어머니께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리면 늘 반복되는 어머니의 염려말씀(‘호랑이 조심해라’, ‘점점 꼭꼭 씹어먹고’)에 한 결같이 큰 소리로 ‘이예’하고 대답하는 총각의 모습이었다. 별날 것 없지만 작은 정성(꽃, 생선, 뜨끈한 방, 머루, 다래)으로 어머니를 모시는 총각의 모습에서 효도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거창한 선물과 남보기 그럴듯한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상투적인 염려에 ‘예!’하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 생활속에서 부모를 염려하고 기쁘게 하려는 작은 성공이라는 것을 이 총각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순박하고 성실한 총각은 단물이 말라버리는 고통의 경험을 통해 마냥 괴로워할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고,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멋진 남자가 되어 있을 것 같다. 결과만 중요시 되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진정한 효가 무엇인 지를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