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소녀들의 이야기
17살.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기에는 이미 현실을 알지만, 희망을 버리게에는 아직 어린 나이.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 서있는 나이이다.
이 책은 17살 소녀인 정애, 은영, 순지 세 명의 성장소설이다.
이들은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오다가 가정의 경제 상황에
기여하기 위해 기대를 품고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에서는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을거야. 라는 꿈을 품고.
그렇게 낮에는 공장, 밤에는 야간 대학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돈벌기는 허리가 나가도록 힘이 들지만 받는 돈으로는
겨우 생계를 이어간다.
남자친구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학생이 미쳤다고 공순이랑’ 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러나 조금씩 번돈을 모아 시골로 내려가 집에 갖다줄 것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여타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 가지 길밖에 없다.
포기하면 게임 오버. 가족들이 끌어안고 굶어죽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어가면서 ‘살아남는’ 과제를 이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마저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1988년 3월. 안양 그린힐 봉제 공장 화재 사건.
봉재 공장에 불이 난다.
공장 안은 모두 쇠창살로 닫혀있었고 커져가는 불길 속에서도 빠져나올 길은 없었다.
매캐한 연기에 갇혀 죽을 때까지 고통과 엄습하는 두려움에 시달렸을 것이다.
모두 22명의 소녀가 죽고, 순지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
같이 택시를 타고 고향에 돌아가자는 약속도,
함께 꿈꾸었던 미래도 끝이다.
혼자 살아남아 다시, 더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순지는 꿋꿋하게 살아남겠다고 결심한다.
어찌보면 흔한 주제이다. ‘힘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자’.
그러나 마음에 와닫는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이 순간을 견디며 살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