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주제로 한 도서라고 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소개받을 때는 다중인격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라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다중인격의 소유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그런 특별한 아이의 이야기였다.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만나던 순간, 왠지 모르는 음산한 분위기에 끌리지가 않았다.
그런데 책의 특이한 제목을 발견하고는 이게 무얼 의미하는걸까? 의구심이 생겼다.
영재아인 벤과 그 안에 함께 공존하는 조지라는 인물은 참으로 특별했다.
책의 제목처럼 내 안의 또 다른 나 (조지)에서 ( )안에 조지라는 이름을 넣어둔 이유를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야 할 수 있었다.
벤과 조지는 그렇게 한 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공존했다.
본문에도 소개되어 있는 것처럼 정신분열증의 일종인 다중인격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린 아이들이 상상의 친구와 이야기하며 노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채워지지 않은 유아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상상의 ‘나’를 만들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벤과 조지의 관계는 이런 상상놀이의 수준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그러면서도 벤의 동생이 (조지)의 존재를 알아보는 모습에서는 아이다운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까? 그렇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주위에서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등 등 갖가지 상상을 해 보았다.
또, 머리를 스친 영상은 전혀 다른 두 인물을 살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텔레비전 속 청년은 착한 아들과 부모를 마구 때리는 난폭한 아들, 두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난폭한 아들이 되었을 때는 목소리도 눈빛도 모두 달랐다.
부모는 그저 다 자란 아들에게 힘으로 당해내지 못해 맞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는 분명 위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잘 조화된 하나였다.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 또한 따뜻했다.
벤과 (조지)는 서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결국엔 서로가 믿고 함께 할 때가 매순간 최고임을 알게 된다.
작품 속에는 이런 벤과 (조지)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혼가정, 새혼가정, 한부모가정 등의 모습을 그리며 문제가 있는 가정이 아닌 그냥 사회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가정의 한 형태로 여기게끔 한다.
아마 작가는 (조지)라는 인물을 통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혼가정이나 새혼가정의 아이들이 문제아가 아니라 얼마나 똑똑할 수 있는지 얼마나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얼마나 잘 다듬어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가는 벤 속에 (조지)를 넣어 독자들이 들여다보며 역으로 자신 속의 또 다른 모습은 없는지 생각하게 하였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