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 버닝햄
존 버닝햄은 상상과 현실의 벽을 자연스럽게 그린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이들의 일상이 늘 그렇듯 상상과 현실이 늘 같이 공존하니깐 아이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관심있게 읽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건성으로 한 번 읽는다면 모른다. 처음 존 버닝햄의 작품 ‘지각대장 존’을 읽었을 때 좀 당황스러웠다. 그때는 그림책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초기시점인데다가 아가씨였으니 아이들을 대해 본 적도 없고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별로 재미없는 그림책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교육학이 이론이 아니라 삶의 현 시점이 되면서 존 버닝햄의 책이 얼마나 멋진 책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존 버닝햄의 특징은 간결한 그림처럼 글 또한 참 간결하다는 것이다. 작가가 생각을 다 풀어서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림감상하듯 독자가 느끼는대로 독자에게 많은 생각의 여지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2. 책에 대하여
왼쪽 페이지에는 주로 할아버지의 회상과 손녀의 상상을 담았고, 오른편에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일상이 그려진다. 손녀는 할아버지와 봄에는 씨앗을 심고, 여름에는 해변에도 가고, 가을에는 낚시를 하며, 겨울에는 할아버지와 스케이트도 탄다. 할아버지와 1년을 보내는 동안 아이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책에서 보면 여전히 손녀는 어리광 피우고, 고집있고, 소녀다운 아기자기함도 갖고 있다. 또 궁금한 것은 얼마나 많은지 소녀의 생각은 할아버지를 당황하게 할 때가 많았다. 1년을 아이게게 긴 시간이다. 그러나 여생이 얼마남은 할아버지에게는 손녀와 보내는 1년이 참 안타깝도록 짧은 시간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땐 말이다, 학교가 끝나면 한길에 나와서 굴렁쇠를 굴리며 놀았단다.
할아버지도 아기였던 때가 있어요?
나도 가끔은 잊어버리는 것. 우리 엄마도 언제나 엄마는 아니었는데….
창고에 거미줄과 먼지를 무겁게 내려 앉은 할아버지의 어릴 적 장난감들이 왼편에 그려져 있다. 우리 엄마도 아끼던 물건이 있었을텐데…. 가슴 속에 무엇을 지니고 있을까? 이젠 늙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다는 엄마는….
그 해 겨울 할아버지는 병이 악화된 것 같다. 소파 옆 테이블에는 담배 대신 약병들이 널려 있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기면 할아버지가 늘 앉아계시던 초록색 소파와 테이블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맞은 편에 조용히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할아버지의 부재가 어린 소녀에게 크게 와 닿게 할 수 있었던 작가의 역량. 영국의 3대작가라 불린만하다. 할아버지가 소녀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이 놀 때 늘 앉아 계시던 초록색 소파에 할아버지는 더이상 계시지 않다.
<독후활동: 이야기 나누기>
존 버닝햄의 책이 좀 어렵게 느껴지는 건 독자에게 많은 생각의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해보았다. 오늘은 아빠도 참석시켰다.
우선 이 책을 읽다 보면 3가지 의문점이 든다. 그것도 아주 강력히. 아이도 재기하는 문제. “대체 왜 이 아이는 할아버지랑 살고 있을까?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러나 누구의 대답도 같지는 않다.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만큼 아는 만큼 판단한다. 은지의 대답을 들어보면 내가 극성맞은 아들을 향해 했던 말들이 담겨있어 반성을 했다. “은수야. 넌 누구 닮아 극성맞니? 할아버지 할머니랑 좀 살다 올래?” 전혀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한 말인데 은지는 그 말에 정말 그럴 수 도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독후활동>
은지의 대답
1. 왜 소녀는 할아버지랑 살게 되었을까?
– 엄마, 아빠가 직장다녀서 종일반 보냈는데 맨날 엄마 아빠가 바빠서 봐 줄 수가 없었어.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보낸거야. 동생은 말을 잘 듣는데 얘는 좀 극성이거든.
2.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 응. 아파서 병원에 갔나? 아냐. 아무래도 할아버지 하나님한테 간 것 같지. 손녀가 너무 힘들게 해서 병들어서 빨리 죽은거야. 애 할아버지 말 잘 안듣고 그랬잖아. 할아버지한테 화내고 말도 안하고, 할아버지가 초코아이스크림이라고 했는데 딸기 아이스크림이라 우기고, 막대사탕 막대 필요하다고 막 사달라고 그랬잖아.
3. 그래. 그럼 끝에 유모차에 있는 아이는 누굴까? 소녀는 그 후 어떻게 된 것일까?
– 응. 동생이야. 엄마, 아빠가 동생도 있고 또 애는 극성맞아서 돌보기 힘들었는데 이젠 얘도 커서 동생도 잘 봐주고 엄마말도 잘 들을 수 있어. 할아버지 없으니깐 혼자서는 살 수 없잖아. 밥도 먹어야 하고.
->은지의 말 속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담겨있었다. 내가 놓친 부분인데 소녀의 성장이었다. 은지의 말처럼 동생도 봐 줄 수 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장 말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아이는 성장한 것이다.
엄마의 대답
1. 엄마, 아빠가 죽었다. 그래서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맡겨진 것이다.
2. 할아버지도 죽었다.
3. 입양 되어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 말하고 보니 내가 소녀의 인생을 너무 가혹하게 한 것 같다. 엄마아빠의 죽음이 있은지 일년이 지나 또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니. 가족의 죽음에 대한 슬픔 가득 안겨주고 새로운 가족찾기 운동이라니…..
아빠의 대답
1. 부모님이 소녀를 키울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보냈어. 맞벌이나 이혼등의 이유가 있을거야.
2. 같이 놀다가 잠깐 어디 가신거 아냐? 병원에 가셨나?
3. 에헤. 이런 엄마 아빠가 동생을 낳아서 동생까지 맡겼나보네.
우리 신랑 내가 그림책을 계속 보며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하는 말이….. 어! 계절이 바뀌었네. 뭐? 테이블에 곰방대가 있었는데 약으로 바뀌었다고? 에헤~ 그럼! 겨울에 페렴으로 죽었네. 담배 많이 피워서 폐렴으로 죽었어.
-> 생각도 복잡하지. 꼭 맞추어야 하는 정답도 없는데 왜 그리 생각이 복잡하신지. 그런데, 아빠도 소녀의 성장을 읽었다. 잠깐 아이를 두고 외출 할 만큼 아이는 성장했고, 할아버지만 의지해 사는 것이 아니라 동생을 돕는 개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신랑과 은지의 책 읽는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긴장해야겠다.
원리원칙에 빠지지말고 느끼는대로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넓힐 것. 그런데 폐렴으로 죽었을거라니…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