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컬링
– 최상희 (비룡소)
피겨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아이스하키는 많이 들어봤어도 컬링은 처음 듣는 스포츠 종목이였다. 어떻게 보면 벨소리 같기도 하고 그림 관련 단어 같기도 한데 컬링은 스코틀랜드에서 유래된 동계스포츠이다.
나에게 생소했듯이 고등학교 1학년 으랏차 을하도 마찬가지였다. 피겨 유망주 여동생으로 인해 대전에서 상경하여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두 명의 친구가 다가온다. 마른 몸매를 가진 며루치 인용이와 훨씬 형 같은 몸집을 가지고 있는 산적 강산이였다. 이 두 사람은 10월에 열릴 컬링대회에 출전할 회원을 찾고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던아이가 빗질하고 있던 을하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거부하고‘돈 많이 드는 거, 왜 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컬링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인용이와 강산이 가입한 카페에도 가입했다. 을하는 툴툴거리면서도 연습에 참여하다보니 어느새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세 아이들은 10월 전국 컬링 대회를 목표로 두고 본인이 자청한 코치 추리닝 금보 형과 함께 게임도 하고 훈련도 하면서 컬링에 정을 붙인다. 한 때는 전 컬링 멤버였던 박카스 박화수의 집에서 하체 단련 훈련 및 전지훈련으로 시골에서 3일 내내 감자만 캐기도 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팀워크도 생기고 가장 중요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서로가 곁에서 지켜준다는 믿음. 전지훈련을 엄마 몰래 따라갔던 을하의 동생 연화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뜬금없이 오빠는 좋겠다며 운을 떼던 연화는 “피겨는 혼자 하는데 컬링은 네 명이서 하니까 컬링 하는 오빠가 부럽다.”고 했다. 피겨 유망주로서 많은 짐을 혼자 외롭게 짊어지는 연화를 보며 나는 을하가 연화에게 든든하고 곁에 있어주는 오빠이길 바랬다.
10월 전국 컬링 대회를 앞두고 사건이 터졌다. 평소 앙숙이였던 야구부 남궁최강이 강산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빈 집에서 여학생을 폭행 한 후 범인으로 강산과 동료 2명을 지목했다. 중학교 이사장인 아버지의 돈으로 여학생을 입막음하고 동료들의 입막음을 했다. 강산은 며칠 째 학교도 못 나오고 경찰관에 붙잡혀 욕을 먹고 주변에서도 수군수군 거리며 손가락질 했다. 이 광경을 참을 수 없었던 인용이와 을하는 폭력 사건을 은폐하려는 학교와 남궁최강에 맞서 학교 교실을 비롯한 곳곳에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벽보를 붙인다. 결국 강산은 열흘 정학이란 벌을 받고 폭력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강산의 수난이 펼쳐지면서 나는 인용이, 을하 그리고 추리닝 금보가 했던 말을 잊지 못했다.“사람들은 자기가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거야. 대신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찾아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안심이 되거든. 옳고 그른 건 상관없어. 자기만 아니면 돼.”혹시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을까 소름이 끼쳤다. 나조차도 모르게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지는 않았을까, 주변 친구를 희생양으로 무시하진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일부터, 아니 당장 지금부터 내가 혹시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합리화로 나의 자존심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사람을 대햐겠다고 느꼈다.
컬링 대회 날이 하필이면 강산이의 정학이 풀리는 날이였다. 정학 풀리는 날 학교를 가지 않는다면 학교 측에서 꼬리를 잡아 정말 시킬까 염려한 을하와 인용이는 컬링 대회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강산이는 두 친구를 설득하면서 가정사를 풀어놓는다. 자신이 진 빚도 아니고 자신이 갚아야 할 돈도 아니지만 세 끼 먹듯 꼬박꼬박 빚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빚만 다 갚으면 엄마랑 모여 살고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강산이의 상황에서는 남들과는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가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뒤쫓는 건 그만 두고 다른 법으로 빚을 갚기 위해 자퇴를 한다고. 퇴학을 시키든 상관없으니까 컬링대회에 나가자고. 강산이의 말을 들으면서 안쓰러웠다. 분명 내 주변에도 이런 상황의 친구들이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에 이런 친구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 것 하고 학교도 잘 다니면서 지내고 있는데 힘든 상황 속에서 버텨내는 게 얼마나 힘들까하고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결국 컬링 대회에 참여하기로 하고 헤어진 세 아이.‘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전혀 중요치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고 있다. 컬링. 이 어둠 속, 혼자가 아니라서 좋다. 달려간다. 함께 하기 위해서. 아마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마지막 구절, 혼자가 아니라서 좋고 함께 하기 위해서 한다는 말. 너무 멋있는 말이다.‘함께’라는 말이 얼마나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지 모른다. 의리로 똘똘 뭉친 세 아이들처럼 나도 지금의 내 친구들과 함께 곁에 있으면서 의지가 되고 믿음을 주는 사이로 오래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