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컬링 – 폼 안나고 답 없는 청춘이라도 좋다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10월 1일 | 정가 11,000원
수상/추천 블루픽션상 외 4건
 큰 아이한테 물었다.  ‘왜 그 노래만 불러?’  나오는 답은 거의 뻔하다. ‘그냥’.  뭘 물어도 그런 대답이 일수다.  ‘왜 이 옷만 입어?’ ‘그냥. 편해서.’ ‘ 왜 그것만 하려고 해?” 그냥.’  아이들의 일상적인 대화다. 그냥은.  그냥. 그냥 뭐? 그냥 어쨌다고? 묻고 싶다. 정확한 답을 원한다고. 그래도 나오는 답은 ‘그냥’ 한마디로 끝이다.  그냥. 이유없어.
 
 <그냥, 컬링> 핑클파마의 일종도 아니고, 컬링이 뭐지?  각각 4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빙판에서 둥글고 납작한 돌을 미끄러뜨려 하우스라고 하는 표적 안에 넣어 득점을 겨루는 경기가 컬링이란다.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했고, 1998년 제 18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다고 네이버 백과사전은 이야기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했단다.  그래도 캐나다가 강국이란다.  차을하가 서인용에게 묻는 대목이 있다.  “종주국은 스코틀랜든데, 왜 캐나다가 강국이야?” 대답이 뭔지 읽지 않아도 알것 같다. 뭐라고 했을까?  “좋아하나 보지”  <그냥 컬링>이라는 제목에 딱 맞는 답이 아닐까?  좋아하나보지. 그러니까 강국이 되었겠지.
 
 이 녀석을 위해서 부모가 모든걸 버리고 서울로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  연화가 피겨의 재능을 보였기에, 모든것을 포기한 엄마 덕분에 서울, 그것도 근교로, 그 코딱지만한 방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러니 어디서나 조용히 있고 싶고, 슬슬 그냥 될데로 살고 싶은 차을하에게 뭔가 희망이 있는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글쎄, 꿈이 있다면 연화가 CF 빵빵 찍어서 피시방하나 열어주면 감사하고.  이런 을하가 난데없이 ‘컬링’ 팀에 스카우트 된다.   비쩍 마른 몸을 파닥이는 게 딱 멸치처럼 생긴 서인용과 산적이란 별명답게 엄청난 덩치와 포스를 지닌 강산, 이 어울리지 않는 콤비는 구성원이 꼭 넷이어야 하는 컬링팀을 이뤄 대회에 나가기 위해 으랏차차 차을하를 컬링으로 끌어들이게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랬다.
 
 아이들의 별명을 짓는 수준은 초등학생이나 고등학생이나 똑같다.  성인이나 되어야 이름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을까, 아니 알수 없는 일이다.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똑같이 나올테니까.  어쨌든, 이름 덕북에 항상 으랏차차인 을하와 서인용이란는 이름을 보고 딱 떠오르는 성인용과 며루치라는 별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용이, 그리고 또 한 친구. 무시 무시한 강산.  이름 하나는 멋지다.  포스도 멋지다. 강산이라는 이름보다는 산적이라는 별명이 더 어울리는 이 녀석과의 만남이 을하를 연화를 변화게 만든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이름을 가진 책들이 변하고 있다.  권선징악을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이러이러하게 자라야만 한다면서 교과서 적인 이야기만을 풀어내고 있지도 않다.  특히 블루픽션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들은 더 그렇다.  그래서 블루픽션이 좋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맘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것이 사실이고, 그렇다면 내 아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고싶은 것이 사실이다.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이야기.  우리 아이에 이야기가 아닐것이라고 믿고 싶은 이야기. 하지만 너무나 현실인 이야기들.  
 
 리드 / 세컨드 / 서드 / 스킵 / 컬링이라는 목차를 보여주면서, 은연중에 컬링에 대해서 알게 되지만, 컬링이 중요한것은 아니었다. 왜 이 아이들이 컬링을 하는지, 왜 이 아이들이 피켓을 들고 학교 앞에 섰는지, 그리고 왜 이 아이들이 그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고 , 그 밤에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유통기한 지난 마요참치를 먹는지를 아이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기.  누구에게나 그 시기는 찾아온다.  예의 주시하는 부모의 눈이 있는 아이도 있고, 모든것이 사라져버렸기에 혼자서 버티는 아이들도 있다.  세상이 항상 같지 않기에 쉬운 시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삶이 녹아있고, 어른들의 삶이 보여지고, 그리고 유머가 흐르고 있다. <그냥 컬링>은 말이다.  그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 지는 모른다.  열려있는 결말은 읽으면서 희망을 바라본다.  왜냐면… <그냥>
 
“왜 하는 거냐, 컬링?”
“숨통이 툭 트이더라. 왠지 모르지만,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