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지상주의, 성적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상실감과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감동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어느 학자가 서울의 변두리에 있는 산동네의 아이들을 이십년간 추적을 했단다.
과연 그곳에서 나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였던 것 같다.
대부분 일용직 막노동의 삶을 산 그들의 부모들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슷한 삶을 살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신분상승,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도금공장과 채석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일터에서 얻었을법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골목시장 좌판앞에서 김밥장사를 하는 엄마는 장사가 되지 않아 폐업을 하기에 이른다.
정신지체자인 형과 누나를 둔 장세풍은 이제 열 여덟살의 긍적하나 만큼은 국보급의 멋진 소년이다.
그가 마주한 세상은 어둡고 뛰어 넘어야 할 벽은 높기만 해 보인다.
공부는 시원치 않지만 화장실 청소는 끝내주게 잘하는 세풍은 엄마에게 가게를 차려주고 싶어
자퇴를 한 후, 음식점 배달원으로 취직을 한다.
그저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그말은 그저 격언으로만 써먹는 것일까.
배달시켜먹고 음식값을 떼어먹는 몰염치한이 있는가 하면 자기 영역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쪼잔들이 태반인 세상이다.
어린 소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자기 실속만 챙기는 업주들도 있다.
가진 것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지하 셋방의 곰팡이 낀 어둠처럼 빛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풍은 털털 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세상을 향해 보란듯이 달리고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어떤가. 가진 것이 없으면 어떤가. 이렇게 긍정뿐인 소년에게 역경은 초라해 보인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고 옥상에서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는 불구의 사회이다.
여전히 폭력을 정당화하는 못난 교사가 있는 학교는 감옥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청정한 곳에서만 산다는 반딧불처럼 어둠속에 한점 빛이라도 뿌려야 하지 않겠나.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세상에…세풍이 처럼 청정한 소년하나쯤은 세상을 받혀줘야 하지 않겠나.
청소용역업체로 식당도 차리고 화원도 차리고 싶다는 세풍의 무작정 긍정앞에 절망과 폭력들은
무릎을 좀 꿇어줘야 세상 살맛이 나지 않겠나. 꼴찌들에 대한 책 세권을 내겠다는 작가의 공언은
지켜졌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가 꼴찌들에게 박수를 보낼 것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