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면 책을 읽는다?
아이들 감기 치료를 위해 소아과로 향했다.
늘 그렇듯 오가는 버스 안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병원에서 읽어야겠다 싶어 이 책을 짚어 들었다.
오랜 기다림이 심심했던지 내가 읽고 있는 책을 읽고 싶단다. 2학년 아들이.
좀 지루하던 차 아들에게 건네주니 꽤 읽는다.
재미있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단다.
장난감에 화려한 그림으로 가득한 책에 길들여진 아들도 지루함을 타 읽은 책이어서 그런지,
일공일삼 고학년들이 볼 만한 책임에도 재밌단다.
마술사가 코끼리를 불러오는 장면이나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꼬마 군인이랄 수 있는 소년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는가 싶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는 너무 어른이 된 이 엄마보다 아들은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책이다.
코끼리같은 문제는 언제 닥칠지 모른다 – 문제를 해결하는 법
그런데 읽다 보니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책인 듯도 싶다.
표면적인 이해보다 그 코끼리가 무엇을 의미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코끼리 때문에 장애인이 된 백작부인과 코끼리를 불러 내서 감옥에 가게 된 마술사.
코끼리 때문에 만나게 되는 소년과 누이.
어쩌면 코끼리는 무심결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문제, 위기가 아닐까 싶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를 가리킨다 하니 말이다.
특히 코끼리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봤다 할 수 있는 백작부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깨닫는 바가 컸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며 그 사람 탓을 하며 슬픔에 빠져 있기 쉽다.
아무 이유없이,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왜 이리 큰 벌을 받아야 하냐고 한탄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입씨름은 주변 사람들(여기서는 부인을 모시던 한스 익맨)을 괴롭게 한다.
한스가 하는 말에 지혜가 있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들을 하세요. 인생은 짧아요. 정말로 중요한 말만 해야 한다고요.”
자신의 행동에 핑계를 대는 마술사.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이 나누는 화해와 용서는 서로의 짐을 가볍게 한다.
“마술사를 감옥에 다시 가둘 필요 없다고. 그래 봤자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야. 저 사람을 풀어 주겠어. 고소하지 않겠다고…”
…
마술사가 가 버리자 라 본 부인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부인은 큰 소리로 웃으며 아델을 힘껏 껴안았다. – pp. 201~202.
잘못을 했을 때는 깊이 진심으로 사과하라. 변명하지 말라.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나를 힘들게 한다면..
이미 일이난 일에 매여 현재를 허비하지 말고 그 상황과 잘못을 용서하고 자신을 허용하라.
자신에게 더 중요한 사람들, 귀한 것들이 아직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이 책은 내게 이야기한다.
이미 일어난 일들. 코끼리와 같이 나를 짓누르는 문제 앞에 울고 있을 일이 아니다.
그 때문에 인생을 더 깊이 있게 살아가고 지혜를 얻을 지 모른다.
나의 문제에 사로잡혀 내 옆에 있는 귀한 이들을 잊지 않도록 하라..
이 책은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어른들에게는 이와 같은 인생의 지혜를 배우게 하며 사색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