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김장 풍속도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뭐든 ‘빠르고 편하게’를 외치는 세상이니 손이 많이 가는 김장 또한 간소화되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밭에서 배추와 무를 뽑아서 다듬어 씻어서 소금에 절이고 김칫소에 들어갈 채소들을 손질하고 때맞춰 젓갈류를 마련하는 과정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절이는 과정까지의 수고를 덜어주는 절임배추를 사거나 아예 완성된 김치를 사서 먹기도 한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에 겨울철 김장은 귀한 양식이었지만 지금처럼 음식쓰레기가 골칫거리가 될 만큼 버려지는 음식들도 상당한 세상에 몇 백 포기씩 김장을 하는 집은 많지 않다. 지금은 아들네 딸네 나눠줘야 하는 어머니라면 모를까 보통 한 가구에서 겨울 동안 소화시킬 김치는 백포기를 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렸을 때 집집마다 이삼백 포기씩 되는 김치를 어떻게 다 먹었을까 의아한 생각도 든다.
김장의 규모가 적어지는 것뿐 아니라 김치를 직접 담글 줄 아는 사람의 수도 줄고 있다. 올해 김장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비슷한 또래 엄마들 대부분이 시어머니나 친정엄마한테 김치를 가져다 먹는다는 걸 알았다. 이러다가 부모 세대 떠나고 우리 세대가 자식들 김치를 챙겨야 하는 때가 오면 정작 내 자식들 줄 김치 담글 줄 아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오지랖 넓은 고민을 했다. <금동이네 김장 잔치>에서는 어느 시골집에서의 김장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금동이네 작은엄마 고모 삼촌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금동이네 할아버지네 김치도 여러 곳으로 나눠질 모양이다. 밭에서 배추와 무를 뽑는 일부터 시작해서 따끈한 밥에 금방 버무린 김장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 생굴을 곁들여 수고한 식구들과 둘러앉아 식사하는 마무리까지 김장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부록으로 김장에 대한 추가 설명 말고도 이야기 중간 중간 친절한 Tip까지 있어서 이 그림책 한권만 있어도 김장 흉내는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연륜에 더해진 손맛까지는 담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마당에 김칫독을 묻고 볏짚을 세워 김치움막을 세운 모습이 정겹다. 이야기 속 금동이 말대로 요즘이야 김치 냉장고가 있어서 보관이 용이하고 알아서 맛도 지켜준다지만 땅에 묻은 김칫독에서 꺼내먹는 예전 김치 맛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신선한 채소도 사시사철 구할 수 있으니 굳이 초겨울에 큰일 치르듯 김장을 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배추나 무를 비롯한 재료들의 맛이 김장철 즈음이 가장 좋다. 이 또한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다. 온 가족이 총출동하고 이웃 아낙네들이 품앗이하며 서로 돕고 정을 나누던 따스한 김장하는 날이 담겨있다. 이 또한 요즘 같은 세상살이에서 더욱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우리 집 밥상에 거의 빠지지 않고 오르는 음식이 김치와 된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포스런 병이 돌때 비교적 무사히 지나갔던 우리나라의 김치에 외국의 관심이 집중됐었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이후로 김치는 아이의 든든한 병력이 됐다. 김치는 몸속의 나쁜 세균들과 싸우러 출동하는 병사다. 아이는 동치미를 좋아하고 남편은 총각김치를 좋아한다. 나는 남편 술안주로 두부김치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부침개도 만들 수 있고 찌개도 될 수 있는 배추김치가 가장 든든하다. 올해 우리 집 김장은 아이의 고사리손이 도왔다. 흙투성이 무를 어찌나 뽀얗고 깨끗하게 씻어주는지…내년에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