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데오의 보물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1월 19일 | 정가 11,000원

이게 과연 어린이를 위한 책일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든 생각이었다. 절대 가볍지 않는 의미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이미 다 커버린 내가 읽기에 벅찰 만큼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다. 그저 순수하게 동심에나 빠져볼까 하고 집어 들었던 나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나는 어떤 한 문장에 꽂히면 그 책의 장르가 무엇이며 작가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한 문장을 발견하는 것은 우연히 책을 넘기다가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서평일 수도 있고 아니면 책 뒷편에 써 있는 구절일 수도 있다. 이런 나의 책을 고르는 습관 때문에 간혹 엉뚱한 책을 사기도 하고 의외의 책을 읽을 때도 있다. 그래서 좋았던 적도 있고 그래서 괜히 샀나 싶었던 적도 많다. 그래도 그래서 좋았던 적이 더 많아 아직도 이 습관은 바뀌지 않고 있다. [아메데오의 보물]도 아메데오의 꿈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뭔가를, 자기가 찾아내기 전까지는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라는 구절 때문에 보고 싶어졌다. 보물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허황된 꿈처럼 느껴지게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스스로 얻을 생각은 않고 그저 한방주의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런데 아메데오가 말하는 보물은 조금 다른 의미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것을 찾는 것. 그것은 정말 꿈같고 희망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보다 잃어버리고 사는 게 더 많다. 그래서 나중에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 간다. 그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것에는 물질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 용기, 희망, 꿈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더 잃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없어도 우리는 살아간다. 죽을 때나 후회하면서 말이다.

 아메데오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젠더부인의 재산의 처분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메데오는 자신과 달리 존재감이 확실한 윌리엄을 만나 이웃집의 젠더부인의 재산을 처분하는 일을 같이 하게 된다. 그것은 아메데오가 간절히 원하던 꿈을 이룰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고, 윌리엄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동네 사람들과 다르게 처음부터 젠더부인에게 호감이 갔던 아메데오는 그 집에 가서 일을 한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재산을 처분하면서 사건의 계기가 되는 그림 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아메데오는 그 그림이 자신이 찾던 자기가 찾아내기 전까지는 잃어비린 줄도 몰랐던 것일 줄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베두인 족이 찾았던 사해문서 이며 프랑스 어린이들이 찾았던 라스코 동굴이 될 것이다.

그 그림에 얽힌 뼈아픈 나치의 역사와 예술의 힘과 그 그림으로 얽힌 사람들. 한편의 추리소설 같으면서도 아프고 슬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 그림으로 인해 아메데오는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메데오는 이 일로 더 성장하게 될 것이고 윌리엄과 좋은 우정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 그림은 아메데오게는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한다. 사람의 90퍼센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말의 뜻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책을 다 읽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자기 멋대로 에다 사람 부리길 좋아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젠더부인이 사실을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고 조금은 실망했다. 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마치 어머니의 인형으로 산 것 같아서, 사람들이 점점 그녀와 그녀의 집을 싫어하는 것이 슬프기도 했다. 화려했던 젊은 날은 잊혀지고 이제는 낡고 늙은 것만 남은 그녀에게 동정을 하고 있던 나로서는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집에 음향시설을 들이게 하고 그 그림 덕분에 한 소년은 살지 않았냐는 말에 불쾌했다. 우리가 상대를 다 안다고 믿지만 사실을 그건 그 사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말이 맞았다.그렇다고 그 사람의 90퍼센트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90퍼센트는 어쩌면 그 자신들의 몫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 10퍼센트와 90퍼센트의 경계에서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모습에 우리가 알던 것과 달라 실망하고 슬퍼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