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트는 경찰에게는 취조전문가로 불리우나, 심문기술자 혹은 자백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다. 완벽한 시나리오로 무고한 사람을 사건의 용의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는 다양한 사건의 취조협조를 받게되며,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고나자 더욱더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야심을 드러낸다. 그러던 중 제이슨사건의 취조요청을 받으며 상원의원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말에 사건이 일어난 그 곳으로 향한다.
책상 두 개와 캐비닛 하나가 방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그건 용의자와 책상 양쪽에 거의 무릎을 맞댈 정도로 붙어 앉아 씨름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의도된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용의자를 끊임없이 갑갑하고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 좀 더 빡빡하게 만들기 위해 책상 하나를 더 넣었소.“
“완벽합니다.”
“주문대로 의자 하나를 다른 것보다 높은 것으로 했소, 물이나 다과가 필요하겠소?”
-중략
하지만 열 두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기번스와 그가 한 약속을 떠올렸다. 자네가 필요한다면 뭐든 성심성의껏 도와줌세. 이는 그에게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원이 되어 줄 것이다.
“용의자를 데려오시죠.”
그가 말했다.-p.75~p.76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무고한 아이를 용의자로 만들어 가는 순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녹음기와 아이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는 공간뿐이였다.
그는 소년에게 자리를 권했다. 물론 아이가 낮은 의자를 찾아가도록 교묘히 이끌었다. 트렌트는 맞은편에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앉았다. 아직 우위를 드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나, 나중에도 그의 우위는 잠재적으로만 표현될 것이다.
“제이슨, 우선 협조해 줘서 정말로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마.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불편하지 않게 끝내 주겠다. 멋진 정보를 기어해 내 끔찍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정말로 멋질 텐데 말이다.”
온화한 목소리에 할 말은 모두 담았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열심히 할게요.”
그의 첫 번째 말이다. 잘 절제된 목소리. 대답하기 전의 가벼운 호흡,. 두손이 조금 움직이긴 했으나 방어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그래, 믿는다.”
제이슨은 재빨리 방을 둘러보았다. 비로소 주변을 확인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사무실이 좁아서 미안하구나. 빈 방이 하나밖에 없다니 우리가 참아야지 어쩌겠니.”
‘우리’라는 단어는 아이가 이 상황에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는 파트너이자 같은 편이었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편안해졌는지 의자에 등을 기대기도 했다.
트렌드는 녹음 버튼에 손을 갖다 댔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대화를 녹음할 생각이야. 그래도 괜찮겠지, 제이슨?”
아이가 고갯짓으로 동의를 표했다.
트렌트는 소년의 선한 얼굴과 커다란 두 눈에 비친 순수함을 보았다. 정말로 순수한 걸까, 아니면 그것마저 가면인 걸까? 사람들의 가면을 감지해 벗겨 내는 것이 그의 임무다. 완전히 벗겨내지는 않더라도, 가면 아래 감춰진 악의 본성을 엿볼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 소년한테도 악마가 들어 있을까? 아니, 그 능력은 누구한테나 존재한다. 그는 칼시튼의 순수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 눈은 제이슨 도런트의 눈과 비슷했다.
트렌트는 우선 큰아버지같은 목소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자 편안하게 가자, 제이슨. 더도 덜도 말고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해라. 우린 먼저 월요일 사건에 대해 얘기할 게다. 네가 무엇을 보고 기억하는지 말이야.”
그는 의식적으로 ‘살인’이라는 단어를 피했다. 심문이 끝날 때까지 되도록 부담 없는 단어들만 사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제이슨의 이름을 지속적으로 불러 주는 것도 중요하다. 친밀감을 유지해주고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 주기 때문이다.
“기억은 이상한 거란다. 제이슨. 가끔 장난을 치기도 하지. 우리가 기억하거나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일들, 그리고 그 반대로 잊었거나 잊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다 그런거야. 우린 함께 그런 장난들을 파헤쳐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하려무나.”
“저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제이슨. 그냥 편하게 있으면 돼. 여긴 우리뿐이니까. 단둘뿐이지. 친구들하고 떨어져 혼자 있어도 괜찮지?”
이제 최초의 중요한 발걸음을 뗄 때가 되었다.
“ 내 말은, 네가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부를 수도 있단다. 변호사나 상담 선생님이라든지……. 아니면 어머니도 괜찮아.”
이 말의 목적은 소년을 고립시키고 변호사나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떼어 놓기 위한 것이다. 그건 처음부터 확실하게 해 두어야 했다. 또 아이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해치워야 했다. 물론 빼먹을 수는 없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카세트와 녹취록 모두. 기록으로 남지 않는 것은 트렌트의 세세한 몸짓들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불러들인가는 게 우스꽝스럽지 않느냐는 뜻의 어깨짓 같은 것. 어머니를 언급한 것도 의도적이었다. 아이의 미숙한 자존심을 건드려 어머니의 지원을 바란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수순이다. 결국 이런 요소들이 결합하면, 소년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뇨, 괜찮아요.”
확인 사살도 칠요하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하자. 어머니 안 모셔 와도 괜찮지?”
“예.”
“좋아, 제이슨. 계속할까? 우선, 네 소개를 조금 해 보겠니?”
“에.열두 살이지만 11월이면 열셋이 되요. 9월엔 중학교 2학년이 되고요.”
그러고는 끝이었다. 더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 거지?
“취미는?”
제이슨이 어깨짓을 했다.
“취미같은덴 별로 관심없어요. 가끔 책을 읽고, 인터넷 하고 이메일도 해요. 호주에 펜팔이 있는데 멜버른에 산댔어요.”
“인터넷 채팅방?” “십대 채팅방이 있는데 전 그냥 듣기만, 아니 보기만 해요. 말 해 본적은 없어요.” “수줍어서? 그런거지?”그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런가 봐요.”“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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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책을 읽지?” 트렌트 형사가 물었다. 마치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냥 닥치는 대로요. 미스터리를 제일 좋아해요. 공포소설. 스티븐 킨. 공상 과학물.”
“그런 책들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그러잖아?” “그냥 이갸기인걸로. 진짜가 아니에요.” “영화나 텔레비전은 어때? 그것도 폭력적인 장르를 좋아하니? 공포 영화 같은거?”
제이슨은 당혹스러웠다. 공포소설들을 좋아하기는 해도 눈에 불을 켜고 보는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질문은 왠지 그가 공포물에 환장한 놈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다른 소설과 영화도 좋아하는 걸로. 그러니까.「인디애나 존스」나「스타 워즈」같은 모험이야기 말이에요.”
트렌트는 더 질문하고 싶었다. 이 소년의 태도, 불안해하는 모습,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가거나 파을 긁는 행위. 그 모든 것이 그의 결백함과 당홈감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기록되는 건 폭력적인 영화와 소설들을 즐기는 취향뿐이었다. 나중에 그 얘기들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는 모르겠지만.p78-p84
순진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들은 교활한 트렌트의 입을 거쳐나오면서 순식간에 아이는 용의자로 변하게 된다. 말이 얼마나 무섭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 ,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해 보자. 그 정도는 괜찮지?“
“예.”
제이슨이 동의했다. 마무리. 마무리를 잘하면 얼리셔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이 그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넌 얼리셔 바틀릿을 알고 있었다. 그애는 어린 소녀이고 너를 좋아했지. 똑똑한 아이라 게임에서 종종 너를 이기기도 했어. 창피를 주기도 했고.”
제이슨은 항변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이유는 몰라도 이 트렌트라는 형사는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사가 한 손을 들었다. 교통경찰처럼. 그러자 제이슨은 의자에 털퍼덕 주저않았다.
“너는 폭력적인 책을 즐겨 읽는다. 네가 언급한 책들과 영화들 얘기다. 이따금 현실과 상상의 차이가 불확실하다는 얘기도 했고, 공상을 즐긴다는 말도 했어.. 대개는 폭력적인 공상…….”
“하지만…”
다시 교통경찰의 동작.
“너는 얼리셔가 살해된 숲을 잘 알고 있어. 그 애를 살해하는 데 돌이 쓰였다는 말도 했지. 경찰이 그 정보를 공표한 적이 없는데도 돌이 살인 무기라고 말한거야., 맞지?”
“그래요. 하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 가장 큰 요소는 기회와 동기다, 제이슨. 그리고 넌 둘 다 갖고 있어.”
“동기요?”
“얼리셔가 너를 놀렸으니까, 너를 쪽팔리게 만들었으니까.”
“난 얼리셔를 좋아했어요. 그앤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것도 증오하는 건 종이 한 장 차이다. 불꽃은 순식간에 타오를 수 있지. 제이슨,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 다른 사람들한테는 동기가 없어. 그날 오후에 네가 그 애하고 있었고, 그것도 단둘이….”
“단둘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건 이해할 수 있어. 그애를 다치게 하고 싶었던건 아니잖아. 그렇지?”
“예, 난…”
“그런 일은 늘 일어난단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고, 당황하고……. 그러면 모든 게 순간이지. 네가 원해서가 아니라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야. 주변에 돌도 있었고…….”-p124-126
아이의 거짓자백을 받아낸 트렌트는 위풍당당하게 취조실을 빠져나오게 된다.
심리학 공부를 하며 취조기술자가 된 트렌트는 사회에 부적응하는 아이의 거짓자백을 받아내며 자신의 성공을 꿈꿨지만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그는 몰락하고, 거짓자백을 한 아이도 정신적 폭행을 당하게 되면서 함께 몰락해버리는 정말 무거운 내용의 책이였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불편했다. 아이의 한 마디 한마디를 자신이 필요한대로 해석하여 아이를 궁지에 몰아넣는 몰염치한 어른의 모습을 보며 사람의 야망이, 욕망이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느꼈다.
책 무게는 가벼우나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였고,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과 묘사가 잘 되어있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였다. 청소년 도서이지만, 청소년보다는 성인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