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두렵다.
열 두살의 어린 아이가 무기력하게 정신적으로 상처 입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막막하고 답답한 이 상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로버트 코마이어’의 이름 값에 걸맞는 엄청난 필력을 느끼며 짧은 문장이 이끄는 속도감에 끌려 한눈 팔 겨를이 없었다. 일가족을 장난삼아 살해한 칼 시튼이라는 열입곱 소년의 자백을 받아내는 형사 ‘트렌트’는 이 분야에서 꽤 알려진 형사다. 끔찍한 강력범들과 마주 앉아 심문을 할 때면 마치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지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범인들을 동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다가도 확실한 패를 잡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거침없이 몰아치는 베테랑이다. 그에게 있어서 범인들의 손짓과 표정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단서들이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심리전의 미끼가 된다.
‘제이슨’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다. 대개 아이들은 제이슨을 무시했지만 그렇다고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동생 에마와도 사이좋게 지내며 이웃에 사는 어린 동생들의 그네도 밀어주기 좋아하는 수줍은 열 두살의 소년! 멜버른에 사는 친구와 펜팔을 하고 미스터리 소설이나 스티븐 킹의 공상 과학물도 즐겨보지만 브래드 바틀릿의 동생 얼리셔가 직소 퍼즐을 할 때 옆에서 말 없이 지켜보는 것도 좋아한다. 이제 막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재미있고 멋진 시간들이 펼쳐지리라 기대를 하던 소년에게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았을까?
<고백은 없다>는 취조 전문 형사 트렌트가 제이슨이라는 무고한 아이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골에서 짭새로 썩지 않기 위해 상원 의원의 힘을 배경 삼아 출세를 하고 싶은 형사 트렌트의 욕망 앞에 힘없고 약한 제이슨이 거짓으로 자백을 강요받고 무력하게 쓰러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가슴에 분노가 인다.
물증도 없이, 단지 살해 당한 얼리셔를 마지막에 보았다는 이유로 유력한 용의자가 된 제이슨은 물조차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강도 높은 취조를 받는다. 얼리셔를 죽인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되고 싶은 어린 아이의 심리를 이용해 교묘하게 범인으로 몰고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누구라도 부당함과 파렴치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 때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했던 남산 아래의 안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 하 애국지사들을 심문하던 광경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졌다. 누구보다 제이슨이 결백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한 아이의 영혼을 송두리째 파괴시키는 트렌트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다행히 범인이 잡히고 제이슨의 자백이 강요된 것임이 밝혀지지만 사건은 그리 단순하게 끝나지 않아 더 큰 충격을 준다. 거짓으로 강요된 자백때문에 자아에 손상을 입은 제이슨은 누가 책임져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얼리셔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제이슨은 얼리셔를 죽였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에 고통 받는다. 취조실에서의 시간은 지울 수 없는 정신적 데미지가 되어 제이슨을 따라 다닌다. 온몬에 땀이 흐르고 목이 타들어가고 죽을 것만 같은 갑갑함과 죄책감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심지어 행위가 본질로 전이된 제이슨이 자신의 말을 거짓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보보 켈튼에게로 향하는 걸음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
옮긴이는 책 속 로티가 트렌트에게 하는 말을 인용해( “당신이 하는 일이 바로 당신의 정체예요.”) 우리가 하는 일이 단지 직업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을 규정하기도 한다는 메세지를 전한다. 행위가 존재를 규정한다는 사실은 거짓 자백을 한 어린 제이슨에게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거짓 자백을(행위) 한 제이슨이 그 사실을 거짓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부엌칼을 꺼내는 마지막 장면은 아…어떻게 해야 할지….
자백과 고해 성사라는 두 행위가 자발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아도 그 내면에는 고백을 강제하고 죄의식을 강요한다는 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백을 했다고 그 죄가 용서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고백은 누구를 위한 행위일까?…. 또한 행위가 존재를 규정할 수 있다면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전부 착한 사람인 것일까? 그 행동이 다분히 의도된 바이며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다고 해도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에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로버트 코마이어의 깊이 있는 글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의 유작인 ‘고백은 없다’를 통해 진실과 거짓에 대해, 권력과 욕망에 대해, 나아가 정의의 문제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은 후 떠오른 많은 의문들과 분노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책을 알게 되어서 반가웠다.
힘에 의해, 돈에 의해, 혹은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에 의해 거짓으로 강요받고 그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