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맙시다.’ 이 글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이가 기록한 독서기록장에서 가져왔다. 일곱 살 아이에게도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직선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옛이야기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권선징악이나 임기응변의 지혜, 유쾌한 유머와 익살을 담고 있는 옛이야기는 언제나 환영받는 편이다. 『배고픈 외투』는 서양의 옛이야기들에 비해 자주 접하기 힘든 터키의 옛이야기다. 그림책의 주인공 나스레틴 호카는 터키의 실존했던 민중 철학가이자 재담꾼으로 지혜롭고 상식이 풍부했으며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호카(스승)’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라고 한다. 나스레틴의 이야기는 700년이 넘는 동안 구전되면서 터키의 문화생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나스레틴의 묘소가 위치한 아크세히르에서는 해마다 국제 나스레틴 호카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터키에서 인기와 존경을 한몸에 받았음을 짐작할 만하다. 유쾌하고 지혜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존했던 인물이었다고 하니 이 그림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스레틴 호카는 회색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여관에 난입해 소란을 피우는 염소를 잡아주느라 부자 친구의 초대에 늦게 된 나스레틴은 외투를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 너덜너덜하고 염소 냄새까지 풍기는 외투를 입고 잔치에 참석하게 된다. 하지만 입구에서 나스레틴을 맞이하는 부자 친구도 나스레틴의 초라하고 꾀죄죄한 외투 때문에 자신이 비웃음거리가 될까 걱정하고, 모든 손님들도 나스레틴에게 등을 돌렸다. 심지어 음식을 내놓는 하인들마저 나스레틴 앞에는 아무 것도 내놓지 않았다. 자리를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온 나스레틴은 향기 나는 비누로 목욕을 하고 분을 바르고 구두코에 장식술이 달린 새 구두를 신고 보석들이 박힌 터번과 금실로 수를 놓은 번쩍이는 외투를 입고 부자 친구의 집을 다시 찾았다. 부자 친구와 손님들의 환대가 이어지고 상석에까지 앉게 된 나스레틴은 기이한 행동을 하게 된다. 잔칫상에 올라온 음식들을 차례로 외투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먹어, 외투야, 먹어라!”하면서 마지막으로 포도주 한 병을 통째로 외투 안으로 붓는 나스레틴을 보면서 부자 친구가 그 이유를 묻는다. 나스레틴의 대답이 걸작이다. “자네가 잔치에 초대한 것이 내가 아니고 이 외투가 아니냐.” 좌중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인 나스레틴의 대답이다.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그 사람의 외투가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지혜와 함께 외투 하나 때문에 오랜 친구에게 결례를 범한 부자 친구에게 ‘외투는 새것이 으뜸이나 친구는 오래 사귄 벗이 으뜸이다.’라고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준엄한 얼굴로 꾸짖는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면 친구의 잔치 분위기도 망쳤을 것이고 훈계를 들은 손님들 또한 당장의 부끄러움이 지나가면 슬슬 부아가 치밀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외투를 배불리 먹이는 행동으로 각자에게 자기반성과 깨달음을 갖게 하며 현명한 ‘스승’의 지혜를 칭송하며 유쾌하게 잔치를 끝낼 수 있었으니 지혜와 교훈을 익살스런 유머 감각으로 전하는 나스레틴이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700년쯤 전에 살았던 인물이 전하는 인생의 소중한 진리와 지혜를 들으며 인류는 발전과 퇴보 중에서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씁쓸해진다. 10년 가까이 입었고 요즘도 즐겨 입고 활보하고 다니는 나의 낡은 외투가 나를 대변하고, 나의 누옥(陋屋)이 사회 계층구조 안에서의 나의 자리를 결정해주고, 아이의 친구 사귐에 기준이 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곧 그 사람이 되는 세상은 나스레틴 호카의 지혜를 수용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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