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헤라클레스 안젤리카의 유쾌한 이야기

연령 5~9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1년 10월 8일 |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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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동화 속 거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은둔하거나 무시무시하고 난폭한 이미지에 갇혀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다. 몸집은 다른 거인들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지만(세상에서 가장 크니까..) 안젤리카의 부모님도 안젤리카의 특별함에 걱정과 염려로 호들갑떨지 않고, 마을 사람들도 놀림감이나 구경감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저 몸집이 좀 큰 여자아이로 살아간다.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머리도 땋아 늘어뜨리고 뜨개질을 하고 꽃을 좋아하는 안젤리카지만 범상치 않은 힘으로 홍수의 물길을 앞치마로 막기도 하고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는 구름을 끌어다 불을 꺼주기도 하고 길잡이를 잃은 새들을 돕기도 한다. 열두 살에는 늪에 빠진 마차 행렬의 마차를 번쩍 들어 올려 땅에 올려준 사건이 있은 후부터 안젤리카는 ‘늪의 천사’라고 불렸다.

어느 여름날 마을의 곳간을 죄다 습격해서 겨우내 먹을 양식들을 해치워버리는 큰 곰 ‘벼락’ 때문에 마을에는 곰 사냥대회가 열렸다. 안젤리카의 거대한 몸집만 봐도 기가 죽을 만도 하다만 사냥대회에 참가한 남자들은 늪의 천사 아가씨는 집에서 빵이나 굽고 이불이나 꿰매라면서 비아냥거린다. 안젤리카를 비웃던 남자 참가자들은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결국 마지막 안젤리카와 곰 ‘벼락’과의 한판승부만 남았다. 벼락이 하늘로 던져지고, 회오리바람을 붙잡아 꼬아서 거대 밧줄을 만들어 벼락을 하늘에서 땅바닥으로 패대기치기도 하고, 안젤리카 또한 벼락의 재채기에 날아갔다 돌아오기도 하면서 일주일 가까이 엎치락뒤치락 싸움은 계속된다. 어떤 무기에도 죽지 않고 30일 동안 목을 조르고 있어야 죽는 네메아의 사자를 제압하는 헤라클레스가 떠오른다. 결국 곰 벼락을 죽이고 벼락의 가죽을 차지하게 된 안젤리카가 가죽을 걸치고 테네시 주에서 몬테나 주로 옮겨가는 장면에서는 네메아 사자의 가죽 옷과 사자머리 투구가 상징이 된 헤라클레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외모가 남다르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기저에 깔고 있으면서 즐거운 모험과 유쾌한 상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안젤리카와 벼락이 산들을 떼굴떼굴 구르며 휩쓸고 다녀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라 ‘회색 연기 산’이라 불린다는 테네시 주와 벼락의 가죽을 통나무 집 앞에 깔개로 깔았던 곳을 ‘짧은 풀 언덕’이라고 불린다는 몬테나 주에 실제로 이런 전설이나 비슷한 지명이 존재할까 살짝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늘의 ‘큰곰자리’에 안젤리카에 의해 던져진 벼락이 남긴 자국이라는 상상 하나가 더 추가된다. 황당하지만 묵인되는 신화나 전설 이야기를 읽는 듯 즐거운 책읽기다.

 

그림을 그린 폴 젤린스키는 이 책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 안젤리카』로도 칼데콧 아너상을 받았지만 그 외 여러 작품으로 칼데콧 상과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한 작가다. 『룸펠슈틸츠헨』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작품인데 아쉽지만 국내에 소개된 책은 두 권이 전부인 것 같다. 글이 알려주지 않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려주는 것이 그림의 몫이다. 안젤리카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해낸 용감한 일들이나 큰 곰 ‘벼락’의 사나운 발톱들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가 그림 속에 들어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 안젤리카』는 체리나무와 은행나무 베니어 판 위에 오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나뭇결이 살아있고 나무판 위에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다. 하인츠 야니쉬의 글에 그림을 그리는 젤다 마를린 조간치의 그림에서도 이런 기법을 만난 적이 있다. 보편화된 방식인지 전통방식인지 전문가가 아니니 알 길이 없다. 『황소 아저씨』의 정승각님이 동물과 물건들의 부조를 뜨고 모시를 풀칠해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선보인 것처럼 그림 작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새로운 시도가 계속될수록 그림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눈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