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한다. 초등학생 대부분이 가수나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는 상관없이 모두 똑같은 꿈을 갖는 것 같아 걱정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진정 마음으로 닮고 싶은 사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위인이 절실하게 필요 한 때이다. 새싹 인물전은 위인전과는 다른점이 많다. 시리즈의 이름이 위인전이 아닌 인물전 이라는 데 주목 해야 한다. 위인전에 단골로 등장하는 태몽이나 어린 시절의 비범한 에피소드 위인 예정설 같은 과정이 없다. 큰 성공도 자잘한 일상의 인내와 성실함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 주는것이 인물전이 하는 일이다 . 새싹 인물전은 나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내가 알고 있는 삶 외에도 또 다른 삶이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룡소] 새싹 인물전 50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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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최은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여기자이다.
최은희가 살았던 예전의 우리나라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그랬기 때문에 여성 1호로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점차 남성 여성이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데는 여성 1호로 일하면서 차별의 벽을 허물었던 여성들 덕분이다.
끊임 없는 도전 정신과 굽히지 않는 의지 열정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여성 1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은희는 1904년 황해도 연백군 배천에서 태어났다.
최은희라는 훌륭한 인물 뒤엔 그 보다 더 훌륭했던 아버지께서 계셨다
큰 부자 였던 은희의 아버지는 재산을 좋은 일에 많이 썼다. 가난한 농부에세 공짜로 땅을 나누어 주고 소작료도 깎아 주었다.
노비도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또 우리나라가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교도 세웠다.
은희의 아버지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평등하고 귀하다고 여겼다.
은희에게 그런 깨인 아버지께서 계썼기 때문에 은희는 남자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남들 보다 더 깨인 생각을 하며 자랄 수 있었던게 아닐까
은희가 보통 학교에 들어 가던 1910년 우리나라는 일본에 나라를 빼았겼다.
우리나라 역사를 배울수 없었고 우리나라 말을 사용 할 수도 없었다.
일본인들은 마을 사람들의 곡식과 재산을 빼앗으며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은희의 가슴에는 일본과 일본일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 했다.
은희는 의정 여학교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큰 선생님들 아래에서 일본인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빼앗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고 애국심을 키웠다.
은희는 독립 운동을 하는 비밀 모임에 들어 갔고 독립 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삼일 만세 운동에도 참여 하였다.
은희의 아버지께서는 나라를 되찾는데는 남자 여자가 없다. 훗날 어른이 되면 여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는데 앞장서라고 이야기 해 주셨다. 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일본 도쿄로 떠나 공부를 하기 시작 했다.
공부 뿐만 아니라 독립 운동도 열심히 하였다. 당시에는 여자는 물론 남자들 조차도 학교를 다니는 것 이 쉽지 않았다. 그런때 은희가 최고의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 달랐기 때문이다.
최은희는 소설과 이광수와 그의 부인 허영숙의 추천으로 <조선일보> 여기자에 뽑히게 되었다. 은희의 배짱과 재간을 알아 주는 인물의 도움이 였다. 1924년 10월 우리나라 민간 신문 최초의 여기자 가 된 것이다. 최은희는 언제나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쳐 생생한 기사를 썼다. 우리나라 여성을 대표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늘 최선을 다 했다. 여자들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여자들의 관심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신문에 썼다. 남자들도 꺼리는 사회의 그늘진 곳도 마다하지 않고 취재를 해서 세상에 알렸다. 최은희는 신문계의 패왕 이라고 불렸다 .
최은희 에게는 최초의 민간 신문 여기자 말고도 최은희의 이름 앞에 최초라는 말이 붙는 일이 몇개 더 있다. 최은희는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전파에 목소리를 실은 사람이고 여성 기자 최초로 서울 하늘을 나는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이다.
최은희는 여자들의 독립운동 단체인 근우회를 만들었다. 최은희와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과 힘께 독립운동은 물론 여성의 생각을 깨우치고 여성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펴쳐 나갔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한 이후에도 최은희는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 잡기 위해 여학교 교장은 여자로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환갑을 넘긴 최은희는 일제 강접기에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기록하고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자손들과 사회를 위해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근대 여성사> 라는 책일 나오게 되었다. 또 자신의 이야기인 <여성 전진 70년 – 초대여기자의회고> 라는 책도 썼다
최은희는 전 재산을 조선일보에 맡겼다. 그 돈으로 최은희 여기자 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여기자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사회를 위해 일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최은희 여기자 상은 해마다 뛰어난 활동을 한 여기자에게 주어졌다 지금도 한국 여기자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상이다.
[ 최은희 ]가 기자로 일한 팔년은 인생의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다. 하지만 최은희는 우리나라가 새롭게 변해 가는 시기에 글로써 수많은 여성의 생각을 일깨웠다. 새로운 학문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소외 받는 이웃을 돌아 보며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가는 데 앞장선 뛰어난 기자 였다. 뿐만 아니라 독립 운동가이자 여성 운동가, 역사가이자 많은 책을 쓴 문필가로 사회에 이바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