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에서 새로 출간된 「zebra」시리즈 중 첫번째 권인 브루노 무나리의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입니다.
흔히들 그림책이라 하면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zebra」시리즈는 그런 편견을 깨고 그림책의 참된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새로 출간된 시리즈물이에요.
저 역시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림책은 아이들 책이라 마음 한켠으로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에게 한 권 두 권 그림책을 읽어주면 읽어줄 수록 그림책이 가지는 종합예술성에 감탄을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활자가 주는 감동과 음악성, 더불어 회화적 감동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예술 장르가 또 어딨겠어요.
더군다나 그림책은 평면적 책과는 달리 3차원을 넘나드는 책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zebra」시리즈는 어린이부터 어른들을 아우르는
말그대로 그림책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시리즈라 할 수 있답니다.
「zebra」시리즈 중 오늘 제가 만나본 책은 야심차게 시작하는 1권으로 브루노 무나리의 작품이랍니다.
브루노 무나리라 하면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마 「동물원」으로 더 유명한 작가가 아닐까 싶네요.
그의 「동물원」을 보면 대담한 화면 구성과 화려한 색감으로 아이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는 책이라
긴 세월이 지나면서도 한결같이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지요.
저 역시 그렇게만 알고 있던 브루노 무나리가 피카소로부터 제 2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울 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디자이너일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브루노 무나리의 <가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외에도 읽어볼만한 「zebra」시리즈로
아오이 후버 코노의 <하얀 겨울>과 마르친 브릭췬스키의 <하얀 곰 / 까만 암소>가 있습니다.
두 권 모두 아트북으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책이더군요.
그럼 지금부터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한번 살펴볼께요.
한정판으로 받은 드로잉북은 책 표지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내지는 하얀 백지로 되어 있어요.
한정판을 받을 수 있어 참 기뻤는데 기쁨도 잠시 요즘 화가로 빙의해 계시는 아드님이 냉큼 색연필로 예술혼을 불지르시더군요.
책은 가로세로 254* 188mm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로 총 6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 하드커버의 양장본이에요.
권장연령은 5세 이상으로 되어 있는데 적어도 책을 찢으면 안된다는 걸 아는 나이부터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zebra」시리즈는 한 권 한 권이 모두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훼손의 가능성이 있는 어린 친구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답니다.
책장을 넘기면 출판사에서 초판을 찍은 년도를 확인할 수 있는데 무려 1956년입니다.
처음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읽었을 때 전 이 책은 최근에 출판된 신간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두번째 읽을 때 초판발행년도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네요.
무려 60년 전의 작품이란게 믿기지 않을만큼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고 있답니다.
마지막의 비룡소(BIR)에서 발행한 2012년이 출판년도라 해도 믿겨질 만큼의 시간을 초월하는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첫 장을 펼치면 깜깜한 밤 작은 불빛을 좇으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책을 관통하는 저 노란 불빛을 따라가는 고양이와 박쥐, 사람들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지요.
책장을 관통하는 구멍 하나만 뚫었을 뿐인데 정말이지 흥미진진해 진답니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하고 여길수도 있지만 콜롬부스의 달걀도 콜롬부스가 탁자에 내리치기 전까지는 엄청난 난제였잖아요.
깜깜한 밤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까만 종이에 파란색 인쇄를 한 정성이 무척 공들인 작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 불빛에 닿기위한 사람들의 소동이 요란하게 끝을 맺네요.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는 대사가 없는 책은 아니지만
굉장히 심플한 내용 전달만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엄마들을 소위 멘붕으로 몰고가는 글자 없는 그림책과 흡사한 수준이죠.
말랑말랑한 두뇌의 아이들은 글자 없는 그림책을 더 즐겁게 보는 경우도 있다지만
단단하게 굳어버린 머리를 쓸려니 솔직히 책을 읽고 처음 든 느낌은 난해하다 였습니다.
새벽의 미명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파라핀 종이에요.
뒷장의 그림들이 겹치고 겹치면서 실제로 풀숲에 서 있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함께 풀숲을 헤쳐나가는 기분을 받게 되네요.
아침 먹는 메뚜기, 이슬 목욕하는 달팽이, 먹이 잡는 장수풍뎅이, 거미줄 치는 꼬마 거미, 구두 닦으러 가는 지네 등을 만나면
어느새 죽은 새를 둘러싸고 있는 개미들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새벽 안개 속을 빠져 나오면 동굴을 만나게 됩니다.
동굴이란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 이번에는 거친 질감의 두꺼운 회색 종이가 등장하는군요.
다양한 배경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질감의 종이와 동굴의 깊이감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구멍들이 읽는 즐거움을 더합니다.
그림책에서 빠질 수 없는 플랩이에요.
해적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보면 낡은 신발과 생선화석이 등장합니다.
금은보화를 기대하며 열어보았다가 슬며시 웃음짓고 책장을 넘깁니다.
동굴 중간의 강은 역시 파라핀 종이로 표현해 물고기들을 원근감 있게 처리했답니다.
얼마나 깊은 동굴이면 강물이 저리 흐르는걸까요.
우린 어디까지 여행을 오게 된 걸까요.
간신히 동굴을 빠져나오면 만나게 되는 반딧불의 행렬이에요.
저 불빛을 좇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가 아주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입니다.
처음에는 브루노 무나리의 유명세와 감각적인 디자인에 눌려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함축적 대사를 풀어내야겠단 생각에 솔직히 어렵고 난해했어요.
참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부디 다른 분들은 보여지는 그대로의 즐거움을 가감없이 고스란히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럼 글 읽으시는 분들 모두 즐거운 책읽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