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 한 켠에 묻어둔 비밀 하나쯤 없을까? 상처 하나쯤 없을까?
말하고 싶지만, 말하고 나면 나에게 비난을 퍼붓지는 않을까? 차라리 조용히 묻어두는 게 낫지 않을까?
‘완득이’의 김려령 작가가 신작으로 ‘가시 고백’을 내놨다. ‘가시 고백’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완득이’처럼 이 책도 청소년 소설이다. 아이들과 영화 ‘완득이’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는데… 이 책도 그런 기대를 품고 읽었다. 아이 수준에 맞춰 책을 보다 보니 나도 청소년 소설을 많이 보게 되고, 또 요즘 청소년 소설에 빠져 있다. 어른 아이를 지칭하는 ‘키덜트’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 책에 네 명의 아이들이 나온다. 아이들이 아니라고 우길 청소년 네 명.
해일과 지란이 특히 마음이 많이 간다. 해일이 스스로를 도둑이라고 칭한다. ‘순수한 도둑’
‘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책을 열며)
어려서부터 예민한 손을 가진 해일은 그렇게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 딱히 훔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한 도둑’이니까.
그리고 아주 우연히 둘러댄 거짓말. 병아리 부화 이야기로 인해 해일은 병아리 부화기를 직접 만들고, 병아리 부화에 성공한다.
또 한 아이. 허지란. 아빠가 두 명이다. 이 세상에서 캐러멜이 제일 싫다는 아이.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날 때마다 손에 쥐여 준 캐러멜때문에 캐러멜색이 제일 싫은 색이고, 또 캐러멜이 제일 싫은 아이. 그래서 아빠도 싫다. 그리고 새 아빠와는 여전히 어색한 사이이다. 그 간극을 메워보고자 전자수첩을 빌렸는데… 도둑을 맞은 것이다. 도둑은 ‘순수한 도둑’ 해일이고.
해일의 병아리 부화는 아이들 사이에서 늘 화제다. 고등학생이 되면 은근 진로와 성적등 무언의 압박감으로 인해 노는 게 노는 게 아닌 분위기로 휩쓸리게 마련인데… 그런 사이에서 해일의 병아리 부화는 사건중에 사건이고, 잠시나마 아이들의 숨구멍을 트이게 하는 장치이다.
진오와 지란이는 해일의 집으로 병아리를 보러 간다. 그리고 수북하게 쌓인 건전지를 가져온다. 이제 공범이 되었다. 도둑놈의 공범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해일은 아이들에게 말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자신이 훔쳤다고. 자신이 도둑이라고. 마음 속 가시같던 말들을 뱉어내려 한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12살 터울이 지는 형은 늘 늦게 들어오고, 해일은 어려서 줄곧 혼자였다. 해일은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형은 해일이 보통 사람과 똑같으며, 똑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보통 사람하고 똑같다고 말해준다. 해일은 이제 안다. 그리고 독자도 이제는 느낀다. 더 이상 해일이 도둑질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또한 지란 역시 그토록 미워했던 아빠를 사실은 사랑했었다는 것을. 그 사실이 싫어서 겉으로 더욱 더 아빠를 미워했었노라고… 하지만 이제 속이지 않는다.
진오, 지란이, 그리고 반장 다영이, 해일의 집에 병아리 아리, 쓰리를 보러 간다. 다영이는 지란의 전자수첩을 해일이 훔치는 것을 보았단다. 거울을 통해. 지란이 친아빠네서 해일이 넷북을 훔치는 것도 진오가 지란이 방의 거울을 통해서 보았었다. 정말 다 들키는 도둑이다. 거울을 통해서.
이제 다영이까지 공범이 한 명 추가될 것이다.
도둑이면 나쁜 놈이지. 하지만 밉지가 않다. 왜? ‘순수한 도둑’이라서? 아니면 물건을 돌려줘서? 아니다. 글쎄, 아이들이 그냥 그자체로 예쁘다.
이건 영화로 안 만들어지나? 영화 만들어지면 아이들 데리고 또 갈텐데… ‘완득이’ 읽었을 때처럼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