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배> – 모리 에토
‘어른’의 사전적 정의는 만 19살이 넘은 사람이지만, 실제로 ‘어른’이라는 단어는 이보다는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신체적으로만 다 자란 사람만이 아닌,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성숙한 사람, 또는 컨트롤이 가능한 사람을 사회에서는 어른이라고 일컫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어른’이라는 존재의 상징성 때문에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나이를 먹고 미래가 다가온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미 법적인 어른이 된 사람들 역시 과연 본인들이 ‘진정한 어른’인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미래를 맞이할 때 쉽게 흔들리고,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 <달의 배>이다.
<달의 배>는 졸업을 앞둔 사쿠라라는 일본 소녀가 단짝이었던 리리와 오해가 생겨 사이가 멀어진 후 스물네 살의 청년 사토루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 또 사쿠라와 리리의 사이에서 괴짜인 나오즈미가 둘의 사이를 다시 되돌려 놓으려고 하는 사건 등을 조명한다. 대단한 인물이나 거창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채 소소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나오즈미가 사쿠라와 리리, 그리고 사토루의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 꾸며낸 ‘달의 배’라는 사물이 출현한다는 장소에 화재가 일면서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각 인물들에게는 개개인만의 사연이 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본인들에게는 매우 크게 다가왔을 만한 상황들. 사람들은 <달의 배> 속의 인물들처럼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닥치면 이 일을 너무 확대시켜서 바라보고 본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인마냥 행동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어른’이라는 상징성에 너무 초점을 둔 나머지 현재의 본인은 잊어버린 채 방황하며 과연 자신이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며 미래 같은 것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쿠라는 남들이 같은 상황에서는 다 했을 만한 행동에 자신이 친구를 배신하는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현실 회피를 시도한다. 리리는 자신이 사쿠라와는 다르게 약하고 똑똑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극단적으로 관계를 단절시키는 선택을 한다. 또, 사토루 청년은 아버지가 도망 가 버린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자존심을 세우며 자신에게 끊임없는 상처를 주며 허구의 상황을 상상해내며 정신병자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 이 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상태를 회복시켜주는 사람은 지금까지 무시를 당하고 괴짜로 취급을 받던 나오즈미인데,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헌신을 다하며,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고, 또 다시 시도한다. 이를 통해서 몇 번의 시행오차가 있었고, ‘달의 배’라는 어떻게 보자면 터무니없는 상상 속의 사물이 생기기는 하였지만, 결국 다행히도 세 인물의 문제는, 관계는 회복이 된다.
<달의 배>에서 보여 주듯이 어쩌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은 괴짜 나오즈미가 보여주는 과정과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갈망하고, 사랑을 추구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도도한 척, 자주적인 척하며 남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숨긴다. 그러나 나오즈미는 자신이 리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당당히 밝히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갖은 수고를 다 하겠다는 의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이는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자존심을 세우고 자기 속으로, 자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속을 외부에 드러내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는 독립적인 개성을 보여준다.
미래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과거는 나를 붙잡는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인 현실 속의 불안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달의 배>가 건네는 따스한 위로와 나오즈미와 같은 아주 조금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