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눈물 ‘천 개의 언덕’

시리즈 블루픽션 66 | 한나 얀젠 | 옮김 박종대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8월 20일 | 정가 13,000원

언제쯤이면 아프리카를 비극이란 단어와 결부시지키 않고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을 무섭게 흔드는 모든 것이 아프리카에 있었다. 내전과 살상, 기아와 에이즈. 그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비극은 인간이 같은 인간을 무차별로 죽이는 일이었다. 학살은 과연 인간이 어느 선까지 내려앉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명한 척도였다. 그러므로 그 선을 넘어서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선을 넘어서는 일이 1994년 르완다에서 생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마음을 나누던 이웃이 하루 사이에 살륙자로 돌변했다.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대학살은 인종 청소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냈다.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100일 동안 80만명의 투치족이 죽었다. 투치족의 75%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 절망의 시간을 잔이란 여자 아이가 겪었다. 가족은 다 죽고 잔만 살아남았다. 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잔은 8살이었다. 잔에게는 깔끔한 성격의 엄마와 진중한 성격의 아빠, 그리고 친구같은 오빠와 떼쟁이 여동생이 있었다. 집에는 집안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들은 후투족이었다. 잔은 종족이 다르다는 것이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을 당할 만큼 엄청난 일이라는 걸 몰랐다. 잔은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암살됐다는 소식이 들리던 날부터 설명할 수 없는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불온한 기운은 삽시간에 후투족 사람들을 휘감았고 살해자와 피살자로 두 부족을 나누고 말았다.

비극의 날이 왔다.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피난을 가기로 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벌써 학살이 시작됐던가? 여자 아이가 달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두개골이 갈라져 있었다. 이제 피를 보는 일이 흔한 일이 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잔은 엄마를 잃고 말았다. 엄마의 참혹한 죽음을 잔은 근처에서 목격했다. 죽음의 빗금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살았고,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은 죽었다. 빠져나오고도 도망가다 붙잡힌 사람 또한 죽었다. 누가 누구를 지켜줄 수 있는 상황이 못 됐다. 알아서 살아야했다. 다행스럽게도 잔은 다시 아빠와 오빠를 만났지만 아빠는 얼마 못 가 끌려갔고, 잔과 함께 숨었던 오빠는 끌려가다 잔 앞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여동생은 엄마가 죽임을 당하던 비슷한 시간 다른 곳에서 이미 죽었다.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었다. 믿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잔은 알았다. 죽음보다 더 두려웠던 시간이 지나고 투치족 반군이 진입하면서 잔의 목숨은 사선에서 비껴가게 됐다. 그런데 그때부터 마음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반군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보살핌을 받았지만 잔은 말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다 아는 언니를 만나게 되고 잔은 독일에 있는 이모를 떠올린다.

이 책은 잔이 독일의 한 가정에 입양되고 난 후, 엄마와 나눈 이야기들을 엄마가 소설로 만든 책이다. 엄마이자 작가인 한나 얀젠은 잔의 슬픔을 통해 르완다의 아픔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르완다의 비극이 일어난지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건만 살아남은 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흔적처럼 가지고 있다. 누구도 잔의 마음 속에 새겨진 고통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낼 수 없었다. 그러나 잔이 자신의 깊은 상처를 말하고 그 시간들을 돌아볼 때 이미 희망의 싹은 돋아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을 때 인간의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잔에게 독일인 엄마가 있듯이, 이 책은 내게 너도 잔같은 누군가에게 한나가 되면 어떻겠냐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