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태양은 떠오른다

시리즈 블루픽션 66 | 한나 얀젠 | 옮김 박종대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8월 20일 | 정가 13,000원

‘천 개의 언덕 너머 그래도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꾼다.’

1994년 르완다 내전 중 민족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아프리카 소녀 잔이 부르는 죽음의 늪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연가

도서명 : 천 개의 언덕
글쓴이 : 한나 얀젠 / 펴낸곳 : 비룡소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중 발생한 민족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소녀 잔의 아픈 이야기이다. 내전에서 살아남아 독일 양부모에게 입양되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그려낸 이야기로, 작가인 독일인 엄마가 잔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아픔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일을 직접 겪어야 했던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본 사건은 끔찍하리만큼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 짐승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책머리부터 물음표가 자꾸 나왔다.

르완다는 독일과 벨기에에 의해 오랫동안 식민지로 있었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가난한 후투족과 소수이면서 부를 독차지한 투치족의 갈등은 소수의 투치족이 다수의 후투족을 지배하는 형태였다. 그렇게 서방국가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독립을 하는 가슴 아픈 역사 속에 두 부족 간의 권력 쟁취를 위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끊임없이 정권을 차지하고 그 정권을 반대하는 반군들 간의 또 싸움이 벌어지면서 그들 간의 내전은 다른 나라의 관심에서 벗어나면서 장기적으로 갈등은 더 심화되어갔다.

교사인 부모님과 오빠, 여동생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잔. 어려운 것 없이 여유롭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던 잔의 가족은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8살 소녀 잔은 여동생을 질투하기도 하고, 병원 가는 걸 무서워하기도 하는 평범한 소녀였다. 투치족이라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그러던 중 잔의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크나큰 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이 타고 가던 헬기가 폭발하고 주요관리들 역시 죽으면서 투치족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할머니 집에 친척이 다 모여서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게 어제 같은데 말이다.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소식 하나로 마을엔 이상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 살던 친척의 소식을 전하로 온 소년. 잔의 마을도 곧이어 내전에 휩싸인다.

후투족 자치 군은 대통령 살해의 책임을 빌미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투치족을 닥치는 대로 살해한다. 내 민족이 어디냐에 따라 갈라진 운명들. 어제는 바로 옆에서 살던 이웃을 오늘은 찾아가 죽이는 세상으로 변한다. 한 마을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어느 날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하고, 살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고 약탈자가 되어버렸다.

후투족을 피해 도망 다니던 잔의 가족들과 이웃들은 시장의 도움을 기대하고 믿었지만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그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나온 잔은 도망치지만 돌아본 곳에서 발견한 건 비참하게 죽어가는 엄마였다. 아빠와 오빠, 동생 테야 역시도 잔인한 죽음 앞에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결국 잔만 생지옥에서 살아남지만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몸 하나도 지키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마지막까지도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잔은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며 결국 투치족 반군들을 찾아가 살아남는다. 그렇게 인종 학살은 백일 만에 종식됐지만, 이 민족갈등의 내전은 거의 백만 명의 주검을 남겼다. 8살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혹한 현실이었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은 적이 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해하고, 무자비한 약탈과 만행을 저지르는 걸 보면서 잔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를 나도 느낄 수 있었다. 한 편에선 빨래를 널며 하루를 평온하게 시작하고, 한 편에선 사람을 죽이는 광경이 100일 동안 르완다에서 펼쳐졌다. 기억을 들춰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그 잔인한 기억을 이렇게라도 끄집어내 세상에 알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죽어간 가족, 이웃, 민족을 위로하지 않았을까?

책제목이기도 한 <천 개의 언덕>은 잔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옛날 아프리카의 훌륭한 왕이 옥황상제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오는 언덕이다. 왕은 힘겹게 천 개의 언덕을 넘어 가서 옥황상제에게 왕의 북이라는 칼링가를 선물 받는다. 칼링가는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소리를 울려 아프리카 방방곡곡에 알려주는 북인데, 이 북소리는 귀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북소리다. 잔의 이야기는 천개의 언덕을 넘어온 칼링가의 북소리처럼 그때의 아픔을 우리에게 가슴으로 울리며 알려주고 있다. 잔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앞날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