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치를 떨었다.
하지만 우리도 이런 민족상잔의 비극을 이미 반세기 전에 겪었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여서 그 참상이 피부에 그렇게 와 닿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끔찍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잔의 눈과 입을 통해, 그리고 양어머니인 한나 얀젠의 글을 통해 같은
민족을 죽이는 만행이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졌다. 어제의 이웃이 어떻게 잔인해지는지를.
키분고 외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선생님이신 부모님과 장도, 잔, 테야는 언제까지나 일상적인 번잡함만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에 인 파문처럼 조금씩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키분고 병원의 의사인 테오도르가 반군과 내통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민병대가 테오도르의 집에 들이닥쳤고, 이후 걸핏하면 불시에 찾아 왔다고
한다. 그리고 개학을 하여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이 어떤 종족인지 조사했다. 이상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통령의 서거 소식.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암울한 노랫소리는 르완다 민족 대학살의 전주곡이였다.
읽다가 르완다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르완다가 어디 있는 나라일까? 지구본에서 찾아본다.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일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
찾을 수가 없다. 몇 번을 찾아봐도 없다. 안 되겠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서야 찾을 수가 있었다. 우간다 밑에, 지구본 가운데… 두 개의
반구를 부쳐놓은 곳을 유심히 본 후에야 르완다를 찾을 수 있었다. 작은 나라. 그 곳에 이런 참상이 있었다니. 내친김에 르완다 민족 대학살도
검색을 해 보았다.
르완다 사태는 소수의 투치족과 토착 부족인 후투족간의 내전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그들은 같은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며 서로 반목없이
어울려 살아왔다. 서양 열강들이 앞다투어 식민지화할 때, 르완다는 벨기에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후, 두 종족간의 갈등은 시작됐다.
벨기에는 통치 정책의 하나로 신분증에 부족명을 명기하고, 소수 부족인 투치족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다수 부족인 후투족에 대해선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철저한 민족 분리 정책을 폈다. 벨기에로 부터 독립을 하게 된 후, 두 부족사이에 생겼던 갈등의 골은 이를 이용하는 정치 세력들에
의해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이라는 대참변이 일어나게 된다.
6.25 보다도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생각났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죄없는 시민을 가혹하게 학살하는 모습이.
그 속에 잔이 있었다. 사람들을 포위해서 주민회관 쪽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잔은 직감했다.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네 발로 기어
필사적으로 그 곳을 탈출했다. 살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내달렸다. 잔은 산울타리 끝에 이르러서 광장을 내려다 보았다. 엄마가 보였다. 엄마가
군인과 인테라함웨(극단적 후투 민병대. ‘함께 때려잡자’라는 뜻이다.)들에 의해 짓밟히는 모습을 보았다. 쉬지 않고, 만신창이가 되도록
걷어차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군인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아빠와 오빠를 만났다. 하지만 곧 헤어지게 된다.
아빠는 먹을 것을 구해 오겠다고 했으나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오빠는 민병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동생
테야는 어떻게 됐을까? 후에 테야가 그 주민회관에 있었다는 걸 듣게 되었다. 파편이 튀는 가운데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잔의 눈에 비친 르완다의 비극이였다. 어제의 이웃이 이웃을 죽이는 참극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한 마을에서 후투족과 투치족의 상황이 확연히
대비되어 그려졌다. 만신창이, 폐허가 되어 버린 투치족의 건물과 아무 일이 없는 듯 보이는 후투족들의 건물. 그리고 이어 반군이 들어왔고, 이제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그 가운데 잔이 있었고, 잔은 독일에 자신의 이모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지금은 전쟁고아를 입양한 한나 얀센과
라인홀트 얀센과 함께 살고 있다.
조그만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와 양어머니의 글에서 나는 이제서야 그 사건에
대해 조금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미안했다.
‘천 개의 언덕 너머 그래도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