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언덕

시리즈 블루픽션 66 | 한나 얀젠 | 옮김 박종대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8월 20일 | 정가 13,000원

TO. 잔

잔, 너는 가족들을 모두 잃었어. 단지 투치족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말이야. 너는 사촌들과 함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너의 여동생 테야와 사사건건 경쟁을 하기도 했고 오빠 장도와 재밌는 장난을 하기도 했어. 그런데 그 행복했던 시간들은 후투족들이 투치족을 학살함으로써 무참히 깨졌지. 이웃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철저히 적이 되어있었어. 그들은 목숨을 위협하며 투치족들의 재산들을 강탈했지. 결국 너는 가족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어. 나쁘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던 반군들은 후투족들을 살해하고 너희를 구해줬어. 하지만 너는 그들도 후투족들이 남기고 간 재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걸 보고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꼈을 뿐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했어. 잔, 네가 독일에 살던 이모 덕분에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가족들이 생긴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 넌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네 곁에 너를 사랑하고 너만큼 너의 상처를 아파하는 가족들이 있어서 넌 점점 네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될거야. 잔, 넌 죽음을 이긴 아주 강인하고 대단한 아이야. 그러니까 꼭 행복해 지렴.

 이 책을 읽고 생각난 건 ‘까마귀의 여름’의 헨리가 생각났다. 헨리는 전쟁 때문에 가족을 잃고 군인이 되었다. 그리고 잔은 민족 대학살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격따윈 없는건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인 것 같다. 거기다 잔 같은 경우는 자신과 다른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였다. 보기에는 구분도 못하는 그 종족 때문에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었다. 잔은 후투족에게 강인하게 맞섰다. 어리고 약한 여자아이였는데도, 굴복하지 않았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잔이 좋아했던 제임스조차도 자신의 집에 있는 마리 앙젤라 나무를 마음대로 이용하는 걸 보고 세상에 완전히 질렸을 때, 나 역시 이 세상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하지만 지금 잔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도 전혀 지겹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잔의 심정이 되었고, 잔의 이야기를 잔에게서 직접 듣는 것처럼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원래 이런 책은 재미 없을 거라는 내 편견이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