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하필이면 왕눈이 아저씨
앤 파인 저 / 햇살과나무꾼 엮 / 펴낸곳 : 비룡소
하필이면 왜 그 사람일까?
‘하필’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이라고 나와 있었다. 뜻을 풀이하자, 주인공 키티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직설적으로 담겨있었다.
엄마의 새 남자친구를 보며 십대 소녀인 키티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엄마와 동생 주드, 고양이 플로스와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엄마의 남자친구가 등장하면서 고민에 휩싸인다.
좀처럼 맘에 들지 않는 엄마의 남자친구가 키티는 싫은데, 엄마와 주드, 플로스까지 아저씨에게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못 차린다. 제 집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리는 ‘왕눈이 괴물’을 어떻게 하면 쫓아낼 수 있을까? 키티는 고민 아닌 고민을 한다.
아저씨의 이름은 제럴드 포크너이다. 치마 입은 엄마의 다리를 훔쳐보며 개구리처럼 눈이 커지는 ‘왕눈이 아저씨’가 키티’는 정말이지 싫기만 하다. 적은 머리숱에 뚱뚱한 것도 싫고, 나이가 쉰 살인 것도 싫다. 더군다나 지구의 미래가 달린 핵 문제엔 관심조차 없고 주식 기사나 읽으니 더 싫다. 더욱이 엄마랑 활동하고 있는 모임인 핵 비무장 운동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고 눈치가 없어서 마주치거나 말하기도 싫은 존재이다. 가족도 아닌데 키티 네 집을 매일 드나들며 아빠처럼 잔소리를 해대서 귀찮고 싫다.
정말 얼마만큼 미워하고 싫어해야 엄마한테서 떨어질지 고민이기만 하다. 그래서 작문숙제로 ‘내가 싫어하는 것’에 쓸 정도로 아저씨가 싫기만 하다. 그 내용이 우습기도 하지만 키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적어본다.
‘우리 집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꼬박꼬박 찾아온다. 살이 축 늘어지고 독선적인 이것은 우리 집이 자기 집인 양 군다.’
아저씨를 쫓아내기 위해 키티가 생각해낸 방법이란 게
– 엄마의 옛 남자 친구 이름 들먹이기.
– 루피 선생님이 내준 숙제에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는 주제로 작문을 해서 왕눈이 아저씨 심사 긁기.
– 절대로 눈 맞추지 않기.
– 있어도 없는 척 무시하기 등.
그렇게 소심한 복수를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가 또 있다. 키티처럼 헬렌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혼한 엄마에게 생긴 남자 친구는 ‘두꺼비신발 아저씨!’ 얌전하고 착한 헬렌은 수업 시간 도중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울자, 루피 선생님은 키티에게 헬렌을 부탁한다. 먼저 이런 고민을 겪었던 키티가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둘은 분실물 보관 벽장에 들어가서 엄마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키티는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왕눈이 아저씨가 어떻게 자신들 앞에 나타났으며, 엄마와 자신들 사이에 끼어들어 어떻게 방해를 했는지, 그리고 왜 아저씨가 그토록 싫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시콜콜 자꾸만 끼어들어 참견하는 왕눈이 아저씨에게 처음엔 가시를 세우고 덤볐지만, 이혼 후 잘 웃지 않던 엄마가 아저씨와 있으면 훨씬 행복해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는 그런 자신들 옆에 있어주는 아저씨의 존재가 믿음직스럽고 고맙게 느껴진다.
고리타분하고 빡빡한 줄만 알았던 왕눈이 아저씨가 겪어보니 보기보다 책임감 있고 한결 같다는 것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재판장에 선 엄마를 찾아가 엄마가 왜 반핵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면서 지켜주고 함께했다. 그리고 집에 남겨진 우리를 위해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일 만큼 마음이 따뜻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무조건 싫기만 했던 마음에서 이젠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현재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헬렌의 마음을 위로한다.
가족이 해체되고 재혼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 요즘에 책은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이혼 자녀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하는 엄마, 새로운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저씨까지. 그들의 생활을 보면서 부모님과 함께 잘살고 있는 나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키티 네가 아저씨와 가족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