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소년문학 중 동성애자를 소재로 한 작품 <비너스에게>를 읽은 적이 있다. 성문화가 개방이 되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오픈되어지는 사회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향한 우리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커밍아웃을 선언한 한 방송인의 대담한 표현에 대해 사람들은 그의 용기에 과감히 박수를 쳐주었지만, 그에 대한 뾰족한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 여전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 시선은 곱지 않다. <비너스에게>를 읽으면서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사실을 짚어내고, 금기시 되었던 동성애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의도를 엿보기는 했지만, 고지식한 나에게는 조금은 낯설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작품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부분이 되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키스 금지 리스트>>는 어렵기만 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성애자인 일리에게도, 이성애자인 나오미에게도 사랑은 어려운 것이었다. 이런 사랑 이야기에 앞서 내가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 것은, 이 작품에서는 동성애자인 일리의 이야기를 특별하지 않게, 그저 이성애자와 다름없는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부분인 탓에 나 역시도 동성애자인 일리와 커밍아웃을 하게 된 브루스에 대해서 그다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랑은 사랑일 뿐인데, 동성애자니, 이성애자니 구분짓는다는 것은, 내가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 이 작품은 <비너스에게>에서 인정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나의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은 폭넓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오미와 일리는 어린시절부터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자라온 친한 친구사이이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동성애자인 일리는 나오미를 친구로서 사랑하고 있지만, 나오미는 일리를 이성으로서 사랑하고 있다. 아빠가 일리의 두 엄마 중 한 사람과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고, 엄마는 침대에서 나올 줄 모르는 기막힌 상황에 처했을 때도 두 사람의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마 이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오미가 일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거짓말 덕분이었으리라.
나오미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남자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몸매가 끝내주지만, 나오미는 일리가 처녀림에 첫발을 내디딜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열두 살 때부터 결혼식을 계획해 왔고, 그들은 서로와 첫 키스를 했으며, 일리가 게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리가 게이라고 해서 함께 공유한 과거, 약속한 미래가 바뀌지 않고, 그가 이성애자가 될 때를 기다리지 말라는 법 또한 없으니 말이다.
나오미와 일리는 질투로부터 서로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 ‘키스 금지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리는 나오미의 남자친구(세컨드라고 하자. 나오미에게는 일리가 항상 우선이니까.) 브루스와 키스를 했다고 고백하고야 만다.
우리가 서로를 연습 상대 삼아 키스하는 법을 한창 연마하던 열세 살 때, 게이 따위는 내게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의 키스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달콤하고 떳떳했다. 서로에게 첫 경험 상대가 되는 게 우리의 운명임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벽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그의 입술에서 게이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게이의 입술이어야 하는데? (본문 58,59p)
<<키스 금지 리스트>>는 나오미, 브루스, 일리, 범생이 로빈, 나오미를 좋아하는 아파트 경비 가브리엘 등의 등장인물을 중첩적으로 수록하여 사랑에 대한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엿보게 되는 작품이다.
브루스와의 이별에 슬퍼하기 보다는 이제 일리는 영원히 잃었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슬픔이 자라잡은 나오미,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브루스, 나오미를 배신하는 기분이 들지만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아직은 혼란스러운 일리의 이야기가 섬세한 심리 묘사와 함께 기록된다. 그렇게 그들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사랑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나오미도, 일리도, 브루스도, 그리고 나오미의 엄마도.
“나는 그냥…..쉬울 줄 알았어. 나한테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이렇게 쉽게 느껴지다니, 정말 얄궂다. (본문 246p)
나오미는 이제 일리를 놔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엄마도 이제 침대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예 머릿속을 싹 바꿔 봐요. 덫에 걸렸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는 지금…..미로 안에 있지만 나갈 길을 찾고 있다고 생각해요. 덫은 걸리면 빠져나갈 수 없지만 미로에는 출구가 있잖아요. 엄마는 그걸 찾아야 해요.” (본문 251p)
어른이거나 혹은 아이이거나, 이성애자이거나 혹은 동성애자이거나 사랑은 언제나 어렵다는 것을 이들은 깨달아간다. 아프고 상처를 입었지만 이들은 괜찮을 거라는 것도. “괜찮을 거야.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고, 너도 변화에 대처해야 해. 어쨌든 우리는 괜찮을 거야.”(본문 265p)
나오미와 일리, 브루스가 보여주는 첫 사랑의 이야기는 아프고 힘들었다. 첫 사랑은 누구에게나 아프게 기억된다. 무엇이든 처음은 낯설음 탓에 더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리라. 그러나 그 아픔은 성찰을 통한 성장이라는 발판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키스 금지 리스트>>는 현 청소년들의 감각에 맞추어진 작품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점을 소년, 소녀들의 심리 묘사를 통해서 잘 표현하고 있는데, 표지 삽화를 비롯해 현대 감각에 맞추어진 직설적인 표현과 이모티콘에 의한 표현 등이 눈에 띈다.
세상은 점점 변화하고 있다. 고리타분한 시대적 사고방식에 편협된 내 사고방식은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다독이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이 작품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