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금지 리스트라니.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너무 궁금했다. 당연히 두 여자애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여자애 둘이 아니었다.
꽃다운 나이의 두 남녀 나오미와 일리는 어릴 때부터 쌍둥이처럼 지내온, 그야말로 소울메이트이다. 나오미는 당연히 일리가 자신과 결혼할 거라 믿어왔고, 일리의 커밍아웃 이후에도 그랬다. 둘은 서로의 우정을 지키자며 ‘키스 금지 리스트’를 만든다. 둘이 동시에 반한 남자에게는 키스하지 말자는 일종의 게임. 그런데 어느날 나오미의 남자친구인 두 번째 브루스에게 일리가 키스해버리고 만다.
나오미는 왜 일리가 게이여도 반드시 자신과 결혼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냥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니까? 오랫동안 함께 해 왔으니까? 나오미는 결국 자기가 꿈 속에서 살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말이 안되는 거였는데 자신의 환상 때문에 그런거라고. 그리고는 떠나자고 말한다. 자신은 일리에게서, 엄마는 떠나가버린 아빠에게서. 그들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오미는 한층 더 성숙했고 사랑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그게 당연히 잘 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나오미 입장에서는 또 아닌 것 같다. 그녀가 받았을, 그리고 앞으로 받을지 모르는 상처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질 않았다. 십년이 넘게 친했고 사랑했던 친구와 남자 문제로 싸울 줄을 몰랐겠지. 그리고 자기 남자친구가 자신의 가장 친한 남자친구와 사랑하게 될거라는 것도. 정말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힘들었을거다. 앞으로도 힘들겠지. 자신을 좋아하는 이성애자 가브리엘을 좋아하려고 하고 일리에게는 친구로 남으려고 노력하니까. 나오미가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이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왜 남녀가 사랑을 하는 것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저 취향이 다른 것 뿐인데. 두 번째 브루스가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완전히 인식하고 인정하기 전까지 일리에게서 소외감도 느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걱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동성애자들이 괴물도 아니고 그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아니, 받아들이고 뭐도 없이 그냥 사람, 취향이 보통과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들도 순수한 사랑을 마음 껏 할 수 있게.
일리는 나오미와 갈등을 겪고 정리가 된 후에야 비로소 그 둘이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에. 소울메이트 따위는 없고 그냥 정말 가깝다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그것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같다. 일리와 나오미 사이의 가장 큰 벽은 서로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서 진실을 숨기려고,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일리가 게이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는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에는 굉장히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다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사랑에 서투르다는 것.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사랑에 도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은 사랑에 대한 생각도, 방식도 다르다. 단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 같을 뿐. 아직은 어설프고 서투르기에 우왕좌왕하지만, 그 속에서 다 성숙하는 것 같다.
일리와 나오미는 이제 친구도, 연인도 아니다. 일리가 말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일 뿐.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함께 할 사람. 그들이 그렇게 평생 갔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여럿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