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이 되는 아이의 새 책을 보니 사회에 국사가 들어있다. 해가 갈수록 아이의 책도 점점 수준이 높아진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때는 국민학교라 불렀지만) 엄마나 다른 어른들이 볼 때 ‘내가 중학교 때 배운걸 벌서 배우는구나’ 했을 때 살짝 무시하거나 으스대곤 했다. ‘난 이걸 지금 배우는데 엄마는 그때 배웠다고?’ 하면서. 그런데 내가 요즘 그러고 있다. 아이의 수학은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 때 알파벳을 배웠는데 요즘엔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운다. 아이의 국사를 위해서 ‘한국사명장면 삼국과 고려시대’와 ‘공부가 되는 삼국유사’를 준비했는데 아이는 아직 제목만 보고 쉽게 다가가질 않는다. 내가 읽고 권해주면 보통 읽는 편인데 아직 관심이 가지 않나 보다. 그런데 이 책은 아이가 먼저 읽었다. 아마도 부피가 얇고 만화그림이 있어서 좀 쉬워 보였나 보다.
호기심이 많은 형제 준호와 민호는 역사학자인 아빠를 따라 경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가는데 새집 지하실에서 마법의 두루마리를 발견한 둘은 이웃에 사는 비밀을 눈치챈 수진과 함께 두루마리의 숨겨진 힘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석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동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인 ‘햇살과 나무꾼’에서 글을 쓰고 이상규님이 그림을 그리고 각 시대별 전문가들의 감수로 엮은 모험과 함께 배우는 한국사 ‘마법의 두루마리’ 시리즈는 신비한 비밀이 담긴 마법의 두루마리를 펼치면 역사 속으로 떠나 모험을 벌이며 역사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현재 12권이 나왔는데 이번에 내가 만난 책은 고려시대 몽골군에 맞서 대장경판을 지키는 스님들의 이야기다.
부모님이 외출을 하고 준호, 민호, 수진은 지하실로 내려가 과거시대로 떠나는데 깊은 산속 작은 암자 앞에 도착한다. 두루마리와 모래시계를 챙기고 두루마리에 그려진 지도를 보니 경상도 근처에 둥근 점이 찍혀있고 국경선이 평안도 근처에 그어져있는 걸 보고 고려시대로 추정하면서 경상도 어느 절에 와 있음을 짐작한다. 그리고 두루마리의 힘을 빌어 그 시대의 옷으로 변신하는데 낡고 지저분하고 허름한 칡뿌리 신발을 신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래시대 농사꾼 아이들의 모습임을 짐작한다. 언덕을 내려가니 절 주위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쌓아 올려 요새처럼 만드는데 아이들을 만난 젊은 스님은 세 아이가 몽골군이 불태운 마을에서 도망쳐 온 아이들로 알고 또 피란을 가게 되었다고 걱정을 하면서 대장경판을 안전하게 숨겨야 한다고 서두른다. 스님을 따라 들어간 장경각에서 수많은 경판들이 경판꽂이에 책처럼 가지런히 꽂혀있는 모습을 본다. 거란족을 물리친 불심으로 다시 몽골군도 무찌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키려는 대장경판. 몽골군의 창이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 예불을 중지하고 마을 사람들은 산 위로 피하고 무예 스님들은 각자 맡은 자리로 가고 다른 스님들은 절과 경판을 지키기 위해 절에 남는다.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말 울음소리, 죽창과 칼을 들고 절 주위를 지키는 스님들. 그리고 함성들. 끊임없이 밀려오는 몽골군에 힘겹게 맞서 싸우는 스님들의 모습과 불화살에 불길이 번지는 부인사와 대장경판들.
고려시대 거란족에 맞서 승려들은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불심으로 몽골군을 물리친다. 아이들이 있던 곳은 경남 합천 해인사가 아니라 대구 팔공산에 있는 부인사고 팔만대장경의 초판인 ‘초조대장경’이 있던 큰 절이었는데 몽골이 침입과 왜란으로 불타 없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1930년대 초에 다시 세운 거라고 한다. 몽골의 침략 중에 강화도에서 만든 팔만대장경은 다시 만들었다 하여 ‘재조대장경’이라고 하고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했다가 조선 초기에 해인사로 옮겼다. 준호의 역사노트에는 몽골이 왜 고려를 침략했는지, 고려와 몽골군의 전투 (귀주성 전투, 처인성 전투, 충주성 전투) 대장경판을 만드는 방법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신비의 창고 장경각의 모습도 보여준다. 해인사의 울창한 숲 덕에 먼지가 쌓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엔 숲이 파괴되고 관광객이 늘어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장경각 안에는 관광객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요즘엔 전시회도 체험전이 많는데 역사와 관련된 탐험 책이 꽤 있다. 내가 읽은 몇 권의 책을 보면 역사 자체를 알려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마법의 두루마리 시리즈처럼 아이들이 직접 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 시대의 사람을 만나 스스로 그 시대를 느끼게 도와준다. 짐작만 하며 읽는 책보다 현장을 느끼게 해주니 더 실감이 나고 그 사건을 잊지 않게 해주어 도움이 된다. 그나저나 부인사 스님들이 부인사와 대장경판을 지키는 모습이 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