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의 평가처럼 이 작품은 읽고 또 읽고 수십 번 반복해서 읽어도 또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1917년에 태어나 2000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110권의 책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Barbara Cooney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 그림책을 만들었고 그 작업은 죽기 얼마 전까지 이루어졌다. 그 열정과 애정이 작품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인지 책마다 담긴 그녀의 목소리는 나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Miss Rumphius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의 구조라면 이 작품은 한편의 시를 그림으로 옮긴 작품이다.
그 시에는 19세기 잉글랜드 지방에 살았을 한 농부네 가족의 삶이 담겨 있다. Horn Book에서 이 작품을 두고 그림으로 표현된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전원 교향곡이라고 묘사한 것처럼 당시 그 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쉽다. 작가가 모든 작품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내려 애쓴 것처럼 이 작품 안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자연의 모습이 사실적이고 아름답게 들어가있다.
마치 그림이 아닌 그 당시 그 장소를 찍은 빛 바랜 사진을 보는 듯하여,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다.
책은 첫 페이지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깊은 가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을이 짙게 내려앉은 농부의 집 마당에 수레를 매어놓은 달구지가 있다. 곧 달구지에는 1년 내내 가족들이 모이고 만들고 길러낸 물건들이 실린다.
4월에 농부가 깎아 두었던 양털 한 자루.
농부의 아내가 베틀로 짠 숄.
농부의 딸이 짠 벙어리 장갑 다섯 켤레.
농부의 가족 모두가 만든 양초.
아마 섬유로 짠 리넨 천.
농부가 직접 쪼갠 널빤지.
농부의 아들이 부엌칼로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
…
그 물건들을 싣고 농부가 산 넘고 물 건너 향한 곳은 포츠머스 마을 시장이다. 그 곳에서 농부는 가져온 물건들을 팔고 달구지와 소도 팔고 가족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조금 산다.
다시 집으로 향할 때는 이미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고 농부의 옷차림도 두터워졌지만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어느 때보다 포근했을 것이다.
자연은 잠시 쉬고 있는 깊은 겨울에도 가족들은 쉬지 않고 뜨개질을 하고 나무를 깎고 실을 자아낸다.
봄이 되자 가족들은 씨앗을 뿌리고 나무가 주는 것들 거둔다. 또 다시 깊은 가을에 시장에 갈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봄이 지나간다.
도시 아파트에 살면서 시골의 삶을 꿈꾸는 이유는 자연 속에서 자연이 주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며 사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의 삶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책에 나온 가족들처럼 이렇게 부지런하고 이렇게 아름답게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 자연에게 해를 주지 않고 그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 가족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기에 그들의 조용한 일상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봄을 기다리는 이 즈음에 올 봄에는 내 손으로 작은 씨앗 하나 심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모두 이 책 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