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초콜릿 왈츠

시리즈 블루픽션 60 | 모리 에토 | 옮김 고향옥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4월 20일 | 정가 9,000원
수상/추천 나오키상 외 1건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왠지 모를 미소가 튀어나왔다. 그 이유는 표지 때문이 아닐까나? 표지는 마치 초콜릿처럼 달큼하고 아몬드처럼 고소한 느낌을 주었다. 솜사탕 같은 알록달록한 열매들이 매달린, 가시가 아니라 솜처럼 보송보송하고 부들부들해 보이는 선인장과 언밸런스하게 어여쁜 주황색의 금붕어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이런 달큼고소한 표지를 뒤로 한 채 역사적인 첫 이야기를 맞이했다. 제목? 제목이 ‘어린이는 잠잔다?’ 허허 참. 이때까지 이 책의 줄거리가 무엇인지, 무슨 주제를 다룬 책인지 하나도 생각하지 못해 아무 생각이 없던 난 이내 이 책이 얼마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이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이야기 둘을 풀어내겠다.

첫 번째 이야기 : 어린이는 잠잔다. [로베르트 슈만 – 어린이의 정경 中]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실질적으로 ‘나’가 아닌 아키라 형 같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아키라 형의 별장’에서 진행되기 때문 일까나. 아이들은 아키라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낸다. 아, 사실 이 이야기에서 아키라와 아이들의 사이는 우리가 흔히 겪는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은 매년 마다 아키라의 별장에 놀러오기 위해서 항상 아키라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왜? 아키라보다 잘하는 것이 있거나 눈치가 없으면 여름에 이 별장에 절대 초대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써 그렇게 오지 못한 아이들이 2명이나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스는 6년 동안이나 배운 원어민 식 영어를 쓰기는커녕 일본식 영어, 부드럽게 굴러가는 발음이 아닌 딱딱 끊는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수영부에 있었을 정도로 수영을 잘 한다. 하지만 아키라를 위해 이기고픈 욕망을 꾹꾹 눌러 담으며 항상 져줘야 한다. 아키라에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3의 취미(게임, 록 듣기)가 아닌 ‘클래식 음악 듣기’라는 누가 보면 특이하다 생각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 취미를 갖게 된 이유는 예전에 할머니께서 아키라가 형제가 없어 외로울까봐 그 마음을 채우라고 매일매일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게 곧 아키라의 취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아마 아이들은 그 별장에서의 생활 중에 ‘아키라의 취미’가 제일 고역일 것이다. 아키라의 취미가 무슨 상관이냐고? 아키라는 매일 밤 LP판으로 아이들에게 지루하디 지루한 클래식 피아노 음악을 들려준다. ‘나’는 오늘은 절대 자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항상 졸게 되는 자신을 탓한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이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개인의 취향의 차이이다. 작가는 이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모두 다음 년, 그 다음 년에도 아키라의 별장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두 번째 이야기 : 그녀의 아리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中]

이 이야기는 ‘불면증’과 ‘거짓말’로 이루어진다. 아무 이유 없이 벌써 한 달째 불면증에 빠진 ‘나’는 이젠 아무도 오지 않는 옛 음악실로 간다. 그 곳에서 후지타니라는 어떤 여자아이를 만난다. 후지타니는 ‘나’와 마찬가지로 불면증을 앓고 있다. 불면증과 피아노, 후지타니와 ‘나’를 연결하는 끈이다. ‘나’는 점점 그 아이에게 빠져든다. 후지타니는 2달째 불면증을 앓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엄마의 바람 문제라고 한다. 처음엔 ‘나’도 그저 그러려니 했지만 후지타니를 만날수록, 후지타니의 얘기를 들을수록 그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했다. 그 아이의 이야기는 엄마의 바람이 끝나고, 아버지의 바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생은 집을 나갔으며, 오빠는 화가 나 눈썹을 밀어버렸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20명의 아버지 형제들이 서로 유산상속 문제로 다툼을 하는데 다섯째 아들과 여덟째딸이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지타니의 아버지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후지타니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곧 후지타니는 전교에도 알려진 엄청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는 후지타니에게 실망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후지타니에 대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고 결국 졸업식, 후지타니와 ‘나’는 화해를 하고 만다.

불면증과 거짓말, 물과 기름처럼 다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작가는 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로 풀어냈다. 이 이야기에서 보면 후지타니는 ‘나’를 나쁜 의도로 속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나’를 속였을까? 그 점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끼는 건데, 아마 후지타니는 ‘나’가 빨리 편안히 잠을 자고 자신과 같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친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음악’이란 주제로 나무처럼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읽고 느끼며 나는 음악을 직접적으로 다룬 이야기가 아닌 간접적으로 중간에 끼워 넣어 다룬 이 이야기도 전혀 지루 하기는 커녕 아직 연애소설, 이야기책을 아직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 감동적이게, 재미있게 읽었다. 그 음악의 성질, 만들게 된 계기를 중간에 끼워 넣어 이야기를 더욱 더 이해하게 만드는 작가의 글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