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아기 키우기 앤파인 글 / 노은정 옮김 / 비룡소
분홍색 원피스에 모자까지 셋트로 입고 어떤 말을 건네고 싶어 하는 눈빛을 가진 밀가루 인형도 귀엽고 제목 글씨도 정말 예쁜 표지가 맘에 든다. 예전에 읽어보았던 비룡소의 일공일삼 시리즈들도 재미있었는데, 이 책도 그렇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밀가루 아기를 키우는 미션을 진행해 보고 싶다.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시간이 아주 길기 때문에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미션이 주어지면 정말 좋겠다. 아기를 키우려면 책임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파악할 수 있을 테고, 오염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예방접종의 필요성 등 손길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를 키워준 부모님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깨달음을 얻건 못 얻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시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게임을 할 때 뇌는 거의 활성화되지 못하며, TV 등을 시청할 때는 50% 정도 움직이고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고 있으면 거의 모든 뇌가 작용을 한다고 한다. 노래나 옷이 유행이 있는 것처럼 밀가루 인형 키우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을 한다면 생각할 시간이 자연스럽게 생길테니 정말 좋겠다.
‘아이들 가운데 절반은 집에 뇌를 두고 온 것 같았고 나머지 절반은 아예 뇌라는 게 없는 듯 싶었다.’는 4C반에, 엉뚱하게도 ‘밀가루 아기 키우기’라는 연구발표회 주제가 정해졌다. 5가지 규칙를 지키며 육아일기를 날마다 써야하는 것이다. 읽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녀석조차 있는데, 과연 가능한 프로젝트일까?
사이먼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작하기 전에는 감히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엄마가 자기를 키웠을 때 어땠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사이먼의 아빠는 십대 때 아기 아빠가 되었고 아기가 태어난 지 육 주 만에 휘파람을 불며 태연히 떠나버렸고 어쨌거나 엄마는 홀로 사이먼을 키웠다. 그 때 일주일에 한번쯤 배드민턴을 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사이먼에겐 진저리 나도록 싫은 시간들이었다. 사이먼은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하거나 돈이 없어 그럴 형편이 안 될 때 엄마가 자기 몸이 두 개였으면 한결 수월했을 거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걸 숱하게 들었었는데, 그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축구공을 차며 운동장을 돌아야 하는 벌을 받으면서 떠나가버린 아빠한테 “아무것도 안 해 줘서 더럽게 고마워!”라며 공을 세게 차, 탈의의 지붕으로 날아가게 하면서 분노로 이글거리던 맘을 표현하게 된다. 밀가루 아기를 키우면서 아빠와 자신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정리하게 되고, 그동안 홀로 자신을 키워 준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육아일기를 매일 쓰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부모가 되는 일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기는 아빠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
아기를 키우면서 사이먼은 의욕도 없고 뺀질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분통을 터트리는 선생님들도 이해하게 된다. 여전히 벌 받을 것을 저축해 놓은 말썽쟁이지만 그래도 한 뼘만큼 성숙해졌음을 본인도 알게 되고 주변 사람들도 알게 된다. by 汀彬 김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