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력으로 시작된 도전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돌아보는 진지한 성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놀랍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귀찮고 순종보다는 반항에 가까운 십대들이 자신들이 아기 때 밤잠을 설쳐가며 마음 졸이던 엄마의 얼굴 표정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말대꾸를 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사이먼 마틴’은 ‘마틴 사이먼’과 이름이 헤깔리는 바람에 뒤늦게 4C 반에 합류를 한다. 글자도 제대로 못 읽고 맞춤법도 엉망인데다가 통과한 시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열아홉 명의 꼴통들에게 연구 과제가 주어졌으니 일명 밀가루 아기 키우기!!
‘카트라이트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이먼’의 꼬드김에 넘어간 아이들은 밀가루 포대 하나씩을 들고 3주동안 꼬박꼬박 세 문장 이상의 육아 일기를 써야 한다. 밀가루 아기를 함부로 바닥에 내려 놓아서도 안 되고 물에 젖게 해서도 안 되며 과제가 끝날 때까지는 (항시 감시하는 눈이 있기 때문에) 자나깨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아기처럼 보살펴야 한다. 도대체 ‘펠트햄 박사’는 무슨 의도로 이런 연구 과제를 내준 걸까?
덩치도 크고 힘도 장사인 ‘사이먼’은 좋아하는 축구를 하면서도 밀가루 아기가 신경쓰여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보채지도 않는 밀가루 포대지만 혹시 누가 가져가지는 않는지, 검댕이 묻어 더럽혀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뽀송뽀송하게 관리하는 것도 힘들지만 생각보다 신경 쓸 일이 많은 밀가루 아기를 쳐다보던 ‘사이먼’은 문득 자신도 아빠에게 이렇게 성가신 존재였을까 고민한다. 고작 3주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혼자서 지금까지 어떻게 키웠을까? 간신히 6주를 버티다 휘파람 섞인 노래를 부르며 아무 말 없이 떠났다는 아빠는 내가 그렇게 지겨웠을까?
밀가루 아기를 키우며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상처로 아파하는 ‘사이먼’을 보며 네 탓이 아니라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에는 엄청난 책임감과 희생이 따른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모하게 생각없이 행동하는 일들이 줄어들까?
밀가루 아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사이먼’이 찬란한 대폭발을 스스로(?!) 만드는 광경은 단연코 압권이었다. 아빠처럼 되지 않기 위해 밀가루 아기를 지켜려고 노심초사하던 ‘사이먼’이 아빠와의 상처에서 벗어나 자유로와지는 광경은 코끝 찡하도록 감동적이었다. 인형은 그냥 인형일 뿐이야…
‘사이먼’이 자상한 아빠가 되어 아기를 돌보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비록 아빠에게 아기 키우는 법을 배우지는 못 했지만 소중한 것을 지킬 줄 아는 ‘사이먼’이기에 누구보다 멋지게 해내리라 믿는다. ‘사이먼’에게는 책임을 질 만큼 성숙해질 시간이 넉넉하니까…
아기를 키우는 일은 분명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행복하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웃음과 재미, 감동이 맛있게 버무려진 <밀가루 아기 키우기> 덕분에 새삼 엄마되는 일의 즐거움을 헤아려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은 아이라면 부모님께 반드시 감사의 인사를 전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