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라고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니다. 아이들도 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말이다. 그래서아이들 앞에서는 입조심을 해야 한다. 잘못된 말을 가려내고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아이들에겐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별 생각 없이 던지는 한마디가 아이들의 자의식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입조심을 넘어 입단속까지라도 해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함부로 말하는 어른들이 우리 사회엔 참 많다. ‘아이의 자의식’이란 ‘환경의 산물’이란 말과 이음동의어다. 아이가 어떤 환경속에서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에 따라 자의식이 결정된다. 그런데 요즘과 같은 몸 담론의 시대에 성형민국, 성형공화국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평균의 테두리를 벗어난 아이가 건강한 자의식을 갖기란 좀체 쉬울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런 사회 풍조에 당당히 ‘스톱’을 외치는 책이 출현했다. 제목도 유쾌하다. ‘으랏차차 뚱보클럽’이다. 우와, 159cm의 키에 79kg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남학생 고은찬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은찬이의 별명은 십인분, 힘은 장사다. 은찬이네 식구들은 모두 한 몸매 한다. 엄마는 비만 전문 모델이고, 외할머니는 동네의 패셔니스타다. 다같이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의 주목은 당연한 일이다. 격투기 선수였던 아빠는 은찬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은퇴 경기를 하다 세상을 떠나셨다. 냉면을 먹으러 가자던 아빠와의 약속이 물거품이 된 후 은찬이는 더이상 냉면을 먹지 않는다.
요새 엄마는 은찬이에게 다이어트를 하라며 난리다. 아이들이 놀릴 때마다 속상하긴 해도 은찬이는 자신의 몸이 부끄럽지 않은데, 엄마는 뚱보로 살면 큰일이라며 비만교실에 다시 다니란다. 엄마의 잔소리에 은찬이는 역도부에 들어간다. 그러면 살도 안빼도 되고, 무시무시한 체육관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역도가 힘좋고, 똥꼬에 잔뜩 힘만 준다고 되는 건 아닌가 보다. 아, 쉽지 않다. 게다가 며칠 전 본의 아니게 짝인 예슬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할머니는 요즘 당뇨 합병증 때문인지 자주 넘어지시고, 설탕과 소금도 구별하지 못한다. 엄마는 아무래도 일이 줄어든 모양이다. 얼굴빛이 안좋다.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야겠다. 그래야 상금으로 할머니 수술을 시켜드리지.
그러나 첫 출전에 1등은 무리였나보다. 3등에 머물고 말았다. 엄마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난다. 역도를 내켜하지 않았던 엄마였는데 오히려 은찬이를 위로해주신다. 한동안 일이 줄어 힘들어하던 엄마는 이제 비만 전문 모델 대신 빅 사이즈 몰 모델이 되어 종횡무진 활약하신다. 할머니는 구청에서 나온 지원금으로 수술을 받으셨다. 오늘 엄마가 외식을 하자신다. 은찬이는 냉면을 시켰다. 그것도 사리를 다섯 개나 더 얹어서 말이다. 운동으로 잠시 빠졌던 살은 원상복귀했다. 그래도 뚱보 은찬이는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들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채, 아이들을 자본과 소비의 논리로 대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나 타고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 사회의 천박한 기준에 맞추려하는 건 슬픈 일이다. 아이들의 내면엔 관심이 없고 보여지는 것에만 주목하는건 아이들을 괴롭히는 짓이 된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라서 사랑스럽고, 너라서 예쁘고 제라서 귀여운 건데, 우리들은 아이들을 자꾸 비교하고 나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회적 관성에 우리는 이미 물들어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려 노력할때 우리는 이 시대의 저급한 문화를 조금씩 바꾸는 대단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