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은 엄청난 파괴력으로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파괴시킨다. 다시 볼 수 없는 대상이 더군다나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상실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아야할지 모른다.
붕대로 칭칭 둘러싼 머리와 피멍이 든채 꼭 감긴 두 눈을 보며 사람들은 간절히 깨어나기를 빌지만 제나는 눈을 뜨고 싶은 마음이 없다. 출장 중에 황급하게 달려온 아빠는 안타깝게 제나의 이름을 부르지만 제나가 듣고 싶은 목소리는 아니다. 엄마와 제나가 그렇게 그리워할 때 아빠는 곁에 없었으니까…
제나는 파란 나라 속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다.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엄마를 찾으러 다닐 수 있고, 비명을 지르며 운전대를 움켜잡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할 수 있는 곳… 파란 나라에서는 슬픈 일이 없다. 그 곳에서는 행복하고 평화롭게 떠다니며 별일 아니라는 듯 내키는 대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파란 나라가 두뇌 속의 신경화학적인 변화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제나는 마약성 진통제인 ‘데메롤’을 줄일수록 파란 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힌다.
15살 소녀가 겪은 참혹한 사고를 들여다보며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저절로 눈을 감게 된다. 달아날수만 있다면, 그 때의 고통에서 도망칠 수 있다면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하지 않았을까? 제나는 극심한 이명과 두통에 시달리며 이모부의 약통에서 ‘옥시콘틴’을 훔친다. 잠시만이라도 고통이 없는 곳으로 데려다줄 약에 의존해 파란 나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넌 꼭 나처럼 걸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심한 교통 사고를 당한 후에 얼음 속으로 빠지면 어쩌나 하고 겁먹은 사람처럼…
세이블 개울가를 걷고 있던 제나는 양쪽 무릎이 꺾이면서 그대로 주저 앉는다. 그 순간 ‘크로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제나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신의 상처를 안다는 듯이 툭 던진 말 한 마디에 제나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아낸다. 가난한데다 껄렁껄렁한 차림으로 오토바이나 끌고다니는 불량배를 저도 모르게 계속 찾게 되는 제나는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혼란스럽다.
<나는 일어나 날개를 펴고 날아 올랐다>는 상처입은 소녀가 그 상처 앞에 마주서기까지의 아픔과 고통을 보여주는 책이다.
누구나 가슴에 묻은 상처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은 시간이었다. 부디 그 상처가 괴물로 변해 타인을 괴롭히고 자신마저 잡아먹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제나’도, ‘크로우:도, ‘트리나’도 다친 날개를 회복하고 멋지게 비상하는 그 날을 떠올려 본다. 스스로 날개를 접지 않는다면 바람은…삶은… 어디론가 데려다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