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동화 안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내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몫일 것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찰흙만들기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가람이와 창명이 기호는 찰흙으로 만들기를 하다가 싸우게 되고 그 벌로 쓰레기를 줍고 교실에 남아있는 벌을 받았다. 이 세명은 평소에 친한 단짝들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물론 단짝친구도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선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이들이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교실에 남아 있다가 찰흙으로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키가 작은 기호가 바라보는 선생님은 엄청 높은 곳에 있어서 올려다보기 힘들다. 가람이의 엄마는 무섭고, 창명이의 엄마는 이혼을 했다. 기호의 엄마는 베트남사람이다. 한반 아이들이 20명 가량 되는 요즘 초등학생들이지만, 30년 전 내가 초등학생일 때와 비교하면 가족의 구성이 너무나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서로 몰랐을 뿐이지 그것으로 인해 뭔가가 달라지지는 않을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이들이 만든 선생님은 어떨까? 무서운 얼굴보다 웃는 얼굴을, 책보다는 축구공이나 기타를 들고 있는 선생님 모습을 원한다. 그렇게 만들어놓은 찰흙선생님을 통해 아이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요즘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내 기억 속의 선생님 역시 그런 선생님은 없었다. 무섭고, 다가가기 힘들고, 공부를 발해야 알아봐주는 그런 선생님들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작품을 보면서 무엇을 만들었는지 알아채지 못했던 선생님은 자신의 모습이란 걸 전혀 모른채 공룡으로 만들어버린다. 공룡은 무섭다기보다 우습다.
짧은 동화지만, 변화한 현대사회 속 가족구성원의 모습도 보이고, 아이들이 원하는 선생님상도 보인다. 그리고 뭐든 자기마음대로 할 것만 같은 아이들도 사회의 기본 틀과 규칙에 대해서도 잘 인지하고 있어서 그렇게 크게 엇나가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까? 속시원한 탁 트인 청량감은 없지만, 선생님을 만드는 과정에서 약간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읽어보고는 “재미있네, 그런데 너무 짧아!”라는 말을 남겼다. 책읽기 2단계치고는 좀 짧은 게 흠이지만, 속에 품은 내용은 풀어낼 이야기가 많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아이 혼자 풀어내기 어려우니 엄마가 도와주면 좋겠다. 아직 1학년인 딸아이는 선생님에 대해 어땠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제 겨우 1학기가 끝났는데 제법 적응을 잘 하고 있는 듯하다. 딸아이가 원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