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의 새싹인물전을 훑어보니 다른 인물보다 여성이 나오는 책이 자꾸 눈에 띈다. ‘김만덕’을 읽었고 이번엔 허준의 누나라고만 알고 있는 ‘허난설헌’을 만났다. 옛날 여인들의 삶을 읽을 때마다 내가 지금 태어나 살고있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여자가 대체..’라는 말이 있지만 사회생활도 하고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으니 예전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다.
(리뷰: 기억할 거에요 ‘김만덕’)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허엽의 딸로 태어난 초희는 아버지 허엽, 허성, 허봉, 동생 허균과 더불어 허씨 집안의 다섯 문장가로 글솜씨가 뛰어나다. 허엽은 초희의 재주가 아까워 아들들과 똑같이 공부시키고 8살 무렵에 ‘광한전 백옥루에 대들보를 올리며’라는 시를 써 사람들을 놀래 키지만 사회적인 관습 때문에 괴로워한다. ‘여자와 남자가 뭐가 다르다는 거지? 내가 글을 읽으면 여자가 무슨 글이냐고 다들 야단이니.. 아, 난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오빠 허봉의 친구 이달에게 글을 배우며 서자라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이달과 시중드는 하인을 보면서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된다. -가난한 여자의 노래 – 손에 가위 쥐고 일하자니 밤은 춥고 열 손가락 모두 곱았네요. 다른 사람 시집갈 옷을 짓고 있지만 해마다 나는 독수공방한답니다. 참 애잔하다. 가난한 여자의 마음을 저렇게 절절하게 표현하다니..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결혼하지만 남편보다 똑똑함이 흠이 되고 사람들은 초희의 뛰어난 글재주를 헐뜯고 시어머니도 시를 쓰는 며느리가 달가워하지 않지만 오빠 허봉은 초희의 처지를 가엾이 여기고 좋은 붓과 중국에서 어렵게 들여온 책을 선물로 주며 위로한다. 자신을 ‘인간세상에 잠시 머무는 여자 신선’이라고 상상하며 꽃 모양으로 장식한 관을 머리에 쓰고 향을 피우며 신선세계를 노래한 유선시를 쓰며 사람들이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상상세계를 그리고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신선 세계를 노래하다, 세 번째’에 나오는 시 속의 장수처럼 씩씩하게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고 설상가상으로 두 아이가 일 년 사이에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광릉에 묻는다. 허봉의 귀양과 죽음, 스물 두 살에 꾼 꿈으로 생긴 마음의 병과 꿈속에서 붉게 지던 스물일곱 송이 연꽃처럼 숨을 거둔다. 여자가 지은 시라고 낮추어보거나 헐뜯는 것을 염려하여 모두 불태워달라던 유언으로 모두 사라졌지만 허균은 누나의 시들이 잊히지 않도록 시집을 내려고 한다. 중국에서 온 사신 오명제는 그녀의 시가 너무 훌륭하여 다른 시인들의 시와 묶어 ‘조선시선’을 내고 다른 시인들보다 허난설헌이 유명해진다. 1606년 허균은 ‘난설헌집’을 내지만, 중국에서는 유명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얕보자 허균은 신분이나 성별로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홍길동전’을 쓴다. 막연히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재주도 많고 인정도 많은 분인데, 시대와 맞지 않아 인정받지 못한 허난설헌. 그분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는 강릉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면 신사임당도 만날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