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판이 인기를 끌던 어릴 시절, 많지 않은 용돈의 대부분을 문고판 책 구입하는 걸로 사용했던 나는 하룻밤이면 다 읽어버릴 책 내용이 너무나 아쉬워서 책을 고르는 기준을 두께에다 두는 잔머리까지 굴렸다. 아이반호, 흑기사 같은 적지 않았던 그 문고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사자왕 리처드의 이름과 원탁에서 칼을 들고 맹세 하던 기사들의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 아직까지 남아 있다.
내가 이렇게 책에 재미를 들였던 것은 세계명작이 주는 줄거리의 즐거움 덕분이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찾아 읽은 세계명작들은 나를 감수성 예민한 여학생으로 자라게 했고, 언제 어디서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게 했다.
요즘 아이들은 책 읽기를 참 싫어한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다 어려워한다는 말이 맞겠다. 책을 읽으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진득하게 오래 앉아 책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학과에 맞춰 공부를 해야 하고, 자투리 시간에는 스마트 폰으로 친구들과 소통해야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아무리 책을 읽으라고 말해보아도 쇠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를 좋아한다. 재미있는 책의 내용에 한 번 빠져들면 그 다음은 조금 더 쉽게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게 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셜록 홈즈 이야기가 7권의 시리즈로 새로 나왔다. 이 책은 그 다섯 번째 이야기다. 다 알다시피 셜록 홈즈 시리즈를 쓴 아서 코난 도일은 이름 뒤에 “경”이라는 호칭이 붙을 정도로 영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가 만든 등장인물인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는 살아있는 인물보다 더 유명했으며 셜록 홈즈의 명성이 아서 코난 도일을 능가했다고 한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독자의 추측을 배반하는 데 있다. 이 책 역시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다른 책들이 갖는 묘미를 다 갖추고 있다. 책의 구성은 탐정인 셜록 홈즈가 새로운 사건을 맡으면 그 과정을 왓슨이 글로 써서 발표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왓슨 박사 역시 홈즈에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추리력과 판단력으로 셜록 홈즈의 파트너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셜록 홈즈보다 오히려 왓슨의 활약이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특징답게 미궁에 빠진 사건이 하나의 작은 실마리로 인해 차츰 전모가 드러나는데 거기까지 독자와 등장인물과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바스커빌 저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망 사건을 의뢰받은 셜록 홈즈는 자신 대신 왓슨 박사를 사건 현장에 내려 보내고 자신은 런던에서 왓슨의 보고만 받는다. 독자는 셜록 홈즈보다 먼저 사건을 풀어보려 왓슨의 행동과 보고서에 집중하는데 그럴수록 저택의 사망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뒤로 갈수록 수수께끼가 풀리기 보다는 한 번 더 엉키는 긴장감 속에 사건을 해결해야할 셜록 홈즈이 모습은 중반을 넘어서도 보이지 않는다. 홈즈는 런던에 앉아서 왓슨의 보고서에 의존해 지시를 할 뿐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과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셜록 홈즈는 어느 새 사건의 가장 중심부에서 실마리를 잡아내고 있었다. 바스커빌 가에 내려오는 저주가 실은 개인의 탐욕이 빚어낸 조작극이란 걸 밝혀낸 뒤 아무렇지 않은 듯 왓슨과 오페라 극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셜록 홈즈의 여유 있는 모습은 어쩐지 익숙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장면들이 잘 그려지는 이 책을 읽으며 무더위로 축 늘어진 시간을 잠깐이나마 팽팽한 긴장 속에 둘 수 있었다. 책 읽기가 재미없다는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권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두루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들어있는 삽화를 보는 재미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