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뜨거운 오후 태양도 전처럼 지치게 하지 않는다.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눈물이 찔끔 나올 이야기로 여름내 더위로 메마른 내
감정 부스러기들을 촉촉하게 적셔 주고 싶다.
내가 만난 “TV동화 빨간 자전거 (김동화 원작, KBS 쏘울크리에이티브, KBS 미디어
기획, 비룡소 펴냄)”는 메마르고 상처받은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뿌려 줄 책이다.
허기가 가득한 마음에 위로를 주고 싶어 꽃이 활짝 핀 길을 누비는 빨간 자전거 뒤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빨간 자전거의 주인은 집배원이다.
야화리를 누비며 편지를 배달하고, 홀로 사는 노인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집배원은 온 동네를 세세히 살피고, 그들에게 필요한 처방을
척척 해내는 사람이다.
조부모 가정의 아이에게는 부모의 정을, 이웃과 다툼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느낄 수 있게 하는 집배원은 야화리에서 단순히 편지를
배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래전 헤어진 사랑을 만나 노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고,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늙은 부부의 오작교가 되는가 하면 사랑을 앞에 두고
부모와 의견대립 중인 딸과 부모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여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돕는다.
이제 야화리에서 빨간 자전거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메신저인 셈이다.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다. 홀로 또는 부부만 남은 쓸쓸한 옛집에 손님이라고는
집배원과 도시로 나간 자식들 뿐이다.
자식들 역시 제 몫을 하고 사느라 시골에 오기가 만만치않다.
그리고 옛집을 찾아 온 팍팍한 도시 생활이 힘에 부친 자식들은 늙은 부부의
집에 자기의 자식을 맡기고 떠난다.
어느 날 조용한 마을에 몇 년 만에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고, 외국인 며느리와
갈등을 빚던 노인은 이제 며느리의 나라를 이해하려고 한다.
야화리가 두 동으로 나뉘어 오래 전부터 마을을 지키던 옛 동 노인들과 새로
건물을 짓고 들어 온 새 동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벽이 답답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곧 서로의 마을을 확인할 사건이 벌어지고 이제는 대문을
열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을 가진 어머니의 이야기,
노인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할머니표 아메리카노 등 마을의 이야기는 예쁜 꽃처럼
피어난다.
야화리 집배원의 빨간 자전거가 지나간 자리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