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애니메이션 최고 시청률 경신하며 현재 KBS 1TV에서 방영되고 있는 <TV동화 빨간 자전거>가 에세이북으로 출간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인 관계로 텔레비전을 시청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탓에 이런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지 몰랐는데, 책을 펼쳐보는 순간, 책 표지에 적힌 당신의 가슴에 행복이 배달되기까지 5분간의 마법이라는 문구처럼 내 가슴에 어느 순간 뭉클한 감동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도 바빴는지 추억할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던 나에게 잠시의 휴식을 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는 잊고 있었던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내게 선물해주었다.
빨리 달리다보면 천천히 걸어야만 볼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보지 못한 채 지나가게 된다. 지금 우리네 삶이 바로 그렇지 않을까. 가끔은 천천히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빨간 자전거의 집배원처럼 말이다.
오토바이를 타면 가파른 언덕길로 쉽게 오를 수 있고 힘도 훨씬 덜 들고 일도 일찍 끝나지만, 집배원은 자전거가 고장난 경우가 아니라면 늘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떠난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하고 오토바이 탈 때보다 시간도 힘도 몇 곱절이 들지만 오토바이를 타면 엔진 소리에 묻혀 많은 소리들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집배원은 알고 있다. 덤으로 어린 시절, 집배원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누비던 추억까지 떠올릴 수 있어 그는 늘 천천히 시골길을 달린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배를 타는 아빠는 아이를 아이들의 그리움과 외로움이 소용돌이치는 보육원에 맡겼다. 아이는 편지에 ‘바다를 가르는 배 위의 아빠’라고 주소를 쓰고 집배원에서 건넨다. 아이의 그리움을 전해주지 못하는 집배원은 아이의 작은 어깨가 하루종일 마음에 걸렸고 품 안의 편지를 거내 냇물에 띄우는 아이에게 바다를 향해 더 힘차게 갈 수 있도록 종이배를 만들어주었다.
금쪽같은 손주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어 매일같이 도시락을 들고 교실로 가는 할머니와 볼멘소리를 하는 손주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도 집배원에게 배달이 왔다. 빨랫줄에 걸린 양말 중 늘 구멍 난 양말을 골라 신는 아버지를 보며 사랑을 느끼는 아이 이야기와 며느리가 사다준 새그릇보다는 첫애 낳고 기뻐서 산 시퍼렇게 녹이 쓴 놋그릇, 둘째 때 산 양은 그릇, 막내딸 보고 산 스테인리스 그릇이 좋은 할머니는 그 그릇들이 바로 불쑥불쑥 보고 싶은 자식들이라는 것을 며느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큰일을 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란 할아버지인 탓에 오십 평생 손에 물 마른 날 없는 고된 세월을 보낸 할머니가 허리를 다치고 만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는 집배원에게 밥 짓는 법을 배워 탄 밥을 차려준다. 탄내 나는 쌀밥이 달게 느껴지는 노부부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젊은 세대들이 앞으로 살아갈 모습이 아닐런지. 주름살이 싫은 할머니는 할머니의 주름살이 제일 좋다는 손자의 말에 주름살 자랑에 푹 빠졌다.
한참을 웃고 떠드는 사이 할머니의 얼굴에는 남 주기 아까운 주름살이 또 한 줄 늘어 갑니다. 살아온 길, 걸어낸 길 잊지 않으려고 한 줄 한 줄 훈장같이 그려 넣은 할머니의 주름살입니다. (본문 69p)
사람이 반찬이라고 하던 희문 할아버지는 이제 딸의 아들과 같이 살게 되었고, 하루 종일 따분하게 보내는 욕쟁이 할머니 댁 일곱 살 난 손녀는 집배원이 건넨 박하사탕 하나에 사랑을 느낀다. 농사짓는 사람이 멀쩡한 밥을 그냥 퍼 주기는 뭐해 밭에서 밥 먹을 때는 슬쩍 밥을 흘려 같이 땅 파 먹고 사는 개미랑 나누는 박 노인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었으며, 눈이 보이는 않는 엄마와 그림을 그리는 아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또 한 편의 이야기였다. 화가가 되지 말고 음악가가 되었다면 엄마한테 들려 드릴 수 있었음을 안타까워하는 아들에게 전하는 집배원의 이야기는 사랑의 힘을 느끼게 한다. 집배원에서 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할머니만의 아메리카노, 군대간 아들을 면회가려다 다친 엄마를 위해 기꺼이 같이 면회를 가준 집배원의 이야기, 할머니를 위해 바느질하기 좋게 색색 실꿴 바늘 여러 개와 돋보기를 선물한 집배원에게 꽃수가 놓은 손수건을 건네는 할머니 이야기 등 이야기 하나하나가 감동이고 선물이었다.
빨간 자전거를 탄 집배원은 배달할 편지를 별로 없지만, 매일매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배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빠와 엄마를, 누군가를 아들과 딸을 가슴에 품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 그 그리움마저 잊고 살아가는 날들이 너무도 많다. 빨간 자전거의 집배원은 내게 잊고 있었던 그리움, 추억, 가족을 배달해주었다. 오래 전 돌아가신 엄마의 얼굴, 홀로 병원에서 자식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아빠의 얼굴,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셨던 선생님,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한 어린시절의 친구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우리 사회에 이 책은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끈과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가슴이 너무도 따뜻해지는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 <<TV동화 빨간 자전거>>는 독자들에게 따스함을 선물해 줄 것이다.
나는 들길, 산길, 자갈길, 신작로.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빨간 자전거입니다. 때론 부치지 못한 마음을 들고, 때론 그리움의 징검다리를 건너 나는 한 통의 편지가 되어 정겨운 사람들 속으로 달려갑니다.
“찌릉 찌릉~” (본문 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