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집이란

시리즈 블루픽션 71 | 최상희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3년 10월 4일 | 정가 11,000원
구매하기
칸트의 집 (보기) 판매가 9,900 (정가 11,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10%↓ + 3%P + 2%P)
구매

 

같은 아파트에서 19년을 살다가 올해 시골로 이사했다. 좁은 평수였지만 베란다로 숲이 이어져 있어서 보물 같은 집이라 생각하며 살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날마다 주차전쟁을 치러야하는 아파트 생활에 넌더리를 내곤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거기다 게스트 하우스격인 토담방까지 딸렸으니 공간에 대한 만족도는 최상이다. 그런데도 나는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이 집의 앞 베란다에 방석을 가져다놓고 거기만이 내게 할애된 공간인 듯 앉아서 이 책을 다 읽었다. 며칠 춥던 날씨가 풀려 햇볕이 들어온 베란다는 벽과 바닥이 모두 따뜻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돌아가고 싶어지는 곳이 집이라고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칸트가 말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을 질색으로 여길 것이다. 칸트는 마음과 몸을 모두 감싸주는 집에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를 말해보라고 말한다. 등장인물인 중학생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한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나도 책을 읽다말고 생각해보았다. 집에 꼭 있어야 할 세 가지는 뭘까. 가장 필요한 것을 꼽아보았더니 나는 영락없는 주부였다. 집에는 난방과 요리를 위해 불이 꼭 있어야하고, 가족의 식단을 위해 냉장고가, 그리고 내 몸의 고단함을 덜어 줄 세탁기라고 그 이미지를 머리 위 말주머니에 띄워놓은 뒤에  든 생각이다.

 

자폐증을 앓는 큰 아들 나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자 엄마는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온다. 뜬금없이 시골 생활을 하게 된 동생 열무는 형에게만 신경을 쓰는 엄마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사는 이기적인 형에게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이 한적하고 우울한 바닷가 마을에 자신들과 같은 이방인이 또 한사람 보인다. 열무는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산책을 다니는 괴상한 모습의 사람을 칸트라고 이름 짓고 관심을 보인다.

 

들여다보면 상처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유명건축가였던 칸트는 자신이 너무 바빠서 돌보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외부와 단절하고 자신이 만든 집 속에서만 살아간다.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바닷바람과 새들을 벗 삼아 살아가던 칸트에게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나무와 열무 형제의 사랑은 속수무책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나무를 보는 일은 아픔이다. 엄마의 바람이 있다면 자신이 아들보다 더 오래 사는 거였다. 그런데 나무가 건축가였던 칸트에게 마음을 열어보이자 엄마는 희망을 본다.

 

비룡소에서 벌써 71권 째  펴내고 있는 블루픽션 시리즈를 여러 권 읽었다. 이 책은 “명탐정의 아들”로 제 5회블루픽션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다. 중학생인 열무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나무, 그리고 전직 건축소장 칸트가 나직하게 주고받는 이야기는 철학적이면서도 감동을 준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나무를 통해 진심을 드러내 보이기를 두려워하며 마음까지 화장술로 둘러싸버리는 요즘, 진심만 갖고도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철학자 칸트보다도 더 철학적인 말을 할 줄 아는 열무의 따뜻한 마음씨는 읽는 내내 웃음과 함께 감동을 준다. 벽을 쌓고 살아가는 칸트 씨를 보며 한 번 쌓아버린 벽을 허물어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나 열무 형제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전에 이웃과 벽을 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른 채 다 읽고 나서야 자리를 정리했다. 해가 창을 비켜 서쪽으로 기운지 한참이다. 소설을 읽어서 마음이 따뜻해진 건지, 햇볕에 몸이 따뜻해져서 마음까지 노근노근 해졌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무가 말한 것처럼 가장 좋은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집이라고 하는 말에는 깊이 공감한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나보다 더 마음이 따뜻해질 갈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