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나]-당당하게 쭈그러들지 않는 것, 그게 존심이야!

시리즈 블루픽션 74 | 이옥수
연령 12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4년 3월 15일 | 정가 12,000원

<키싱 마이 라이프><개 같은 날은 없다>로 이옥수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고 있었다. 사춘기 딸을 키우고 있는 부모라는 입장이 유독 청소년 소설에 관심을 갖게 하는 탓이리라. 청소년 소설 작가 이옥수의 신작 <<파라나>>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서둘러 책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나와 내 딸의 모습을 함께 보았으며 진짜 내 모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붙여준 이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역시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인해 만들어진 나에게 맞추어가려는 노력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누군가가 붙혀진 내 이름표가 나를 성장하게 하고 나를 바꾸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겠지만, 나의 본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때로는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으며, 마치 진실이 아닌 거짓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어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주인공 정호의 엄마처럼 나 역시도 딸에게 내가 붙혀주고 싶은 이름표를 달아주고 있었다. 그동안은 그 이름표에 버거워하는 딸의 모습을 못 본 척 외면하고 있었는데, 정호의 모습에 자꾸 딸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수업시간에 잠이 든 정호에게 부모님의 호출이 벌이 떨어졌다. 정호가 이제 곧 아이들 앞에서 적나라한 신상정보가 드러날 것을 생각하니 숨이 막히는 것은, 이때까지의 경험상 그의 정보가 노출되면 아이들은 어쭙잖은 동정심을 유발하면서 기계음처럼 멋대로 씹어 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집 앞에 있는 학교 놔두고 굳이 이 먼 학교를 고집했던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하니 정호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호는 ‘착한’을 들먹이는 무개념 인간들을 요주의 인물로 간주하고 만들어놓은 블랙리스트 3호 아름 슈퍼 김씨 아저씨를 만났다. ‘착한 녀석!’. 정호는 ‘착한’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을 찍어 내리는 어떤 비애감과 더불어 알 수 없는 적개심마저 일었으며, 벌건 대낮에 엉덩이를 까고 다니는 것처럼 모욕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 블랙리스트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은 전춘희 여자, 즉 엄마이다.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싶을 정도로.

 

싫다, 좋다, 싫다, 좋다….싫은 것도 좋은 것처럼, 아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정직하게 생각을 나타낼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 착하다는 말로, 아니 착해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 아버지, 불쌍하다. 그런데 불쌍한 것과 날마다 되풀이되는 생활은 다르다. 이것은 자신이 살아내야 할 현실이고 삶이다. 그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는, 묵묵히 홀로 걸어가야 하는…. (본문 142p)

 

담임은 부모님의 호출에 대해 언급이 없었으나 정호의 마음은 늘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직접 부모님을 호출한 담임 탓에 부모님이 학교를 방문하게 되고, 부모님의 방문 이후 정호는 엄마가 만들어준 이름표에 의해 효행 대상을 받게 된다. 부모님을 잘 모셔서 받게 된 효행 대상, 하지만 정호는 자신이 이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부모가 학교에 왔다는 것 때문에, 장애 부모아 살아가기 때문에 효행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정호는 화가 났다. 그리고 이제 타인이 붙혀진 ‘착한’ 이름표를 벗어버리고 자신이 만들어가는 이름표를 얻고자 하는 정호의 성장통이 시작된다.

 

‘파라나’ 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궁금해 찾아보니 ‘마음이 푸르러스 언제나 싱싱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이’라는 뜻이란다. 타인의 붙혀진 이름표에 맞추어 내가 아닌 거짓의 모습의 살아가기보다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저자는 그것이야말로 파라나가 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책에는 정호에게 다가온 효은이라는 친구가 있다.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진 인물인데, 정호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데 힘이 되어준다. 사고로 인해 다리를 잃은 아버지에 대해, 가난에 대해 정호처럼 쭈그러들지 않고 당당한 효은은 정호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더불어 저자는 효은을 통해 “뭐가 겁나서 튀는데, 네가 선택한 것도 아니면서…..인마, 당당하게 쭈그러들지 않는 것. 그게 존심이야!” (본문 121p) 이라고 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당당해지라 말하고 있다.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착한’이라는 이름표에 갇혀 살았던 정호의 갑갑함, 버거움에 대한 심리묘사가 잘 드러나있다. 독자들은 정호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두 친구를 통해 자신의 이름표를 만들어갈 용기와 힘을 얻게 될 듯 싶다. 지금 나는, 타인이 만들어준 몇 가지의 이름표 속에 갇혀있다. 당당하게 내 이름을 찾아가야하는 이유를, 내 아이에게 스스로 이름표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정호를 통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만들어준 ‘모범생’이라는 이름표 속에서 버거워하는 딸의 모습을 정호 속에서 보았고 그로인해 미안함, 안쓰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미안한 내 마음을 담아 이 책을 권해보고자 한다. 자신이 살아내야 할 현실과 삶에 그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음을, 엄마라는 자격으로 박탈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 <<파라나>>는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부모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