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가 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다시 의식하게 된다. 어른들의 도움에 의해서 삶이 유지되던 아이들은 이제 자아가 형성되면서 정서적인 자립을 시도하게 된다.
절뚝거리는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를 걸어다니던 ‘착한’ 정호는 더 이상 엄마의 손을 잡고 싶지 않다. 동네에서 ‘착한 아이’ 소리를 매일 격려와 칭찬처럼 들으며 지낸 정호는 이제 그 속에 담긴 동정심을 읽을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착한 아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호의 몸부림이 시작된다.
먼저 정호는 먼 통학거리를 감수하고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아이들 속에 섞이기로 결심하고 고등학교를 선택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며칠도 못가서 선생님에게 걸려서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엄명이 떨어져서 걱정이 생긴다. 더군다나 아는 친구 하나 없어서 새로 사귀어야할 판에 자신에게 접근하는 친구라고는 ‘백정’이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 별명을 순식간에 지어 스스럼없이 부르면서, 자신의 가난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효은이다. 정호는 그런 효은이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내심 그의 그런 배짱이 멋져보이기도 하고 혼란스럽다.
‘착한’ 딱지를 떼고 싶었던 정호에게 효행대상이 수여되면서 정호는 더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부모님이 학교에 오게 되면서 숨기고 싶은 자신의 치부를 들킨 정호는 더욱 반항적이 되어간다. 이러던 차에 효은의 사정을 알게 된다. 효은에게는 장애를 가진 아버지가 있으면서도 가난이라는 덫이 하나 더 있었던 것.
이야기는 정호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아들의 아픈 몸부림이 자신들의 탓이라는 것을 아는 정호의 부모님의 심경을 표현하는데도 면을 할애한다. 정호의 부담없는 상담사가 되어주는 이모가 만드는 효녀심청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효은의 상황 등등과 정호가 기르는 전갈의 생태 등이 하나의 중심점을 향해 모아지면서 점차 탄탄하게 서로를 얽어매면서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구축되면서 완성을 향한다. 개성있는 다양한 등장인물과 이런 숨겨진 장치들이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박진감으로 작용한다.
정호는 효은에게 결국 자신의 갈등들을 털어놓게 되고, 효은 역시 거리낌없이 행동하기 위해서 참 많은 좌절을 이미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두 친구는 자신들의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삶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에 동의하며, 쪽팔리고 싶지 않은 인생에 뜻하지 않게 쪽팔리는 일들이 생기는 ‘난세’를 현명하게 함께 헤쳐나갈 동지가 된다. :
둘 다 눈길을 먼 곳으로 돌렸다. 두 눈에 힘을 주어도 비질거리며 나오는 눈물과 자꾸만 울컥거리는 감정을 갈무리하기엔 정호와 효은, 둘 다 너무나 어렸다. 바람이 스쳐도 툭 하고 터져서 그래도 허물어질 것 같은, 아니 누구에겐지 모르지만 시퍼렇게 부풀어 오른 분노를 다스릴 방법을 알지 못해서 슬픈 청춘들이었다. (p.155)
청소년시절, 친구들이 몰랐으면 했던 부끄럽게 여겼던 가족에 대한 기억, 가정형편에 대한 기억 등등이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기억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생기면서 공감이 더해질 것이다. 누구에겐들 그런 기억이 왜 없겠는가? 왜냐하면 그때는 바로 그런 나이이니까. 가장 당당하고 싶고 가장 아름답고 싶은 나이. 그래서 슬픔을 유머로 포장해버리고 혼자 몰래 아파하는 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