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 집의 귀염둥이일 듯한 까망씨, 주인 아주머니의 이런 저런 장난감에도 심드렁한 것을 보니 누릴 것을 많이 누려온 고양이가틀림없다. 표지만 보더라도 까망씨의 저 몽롱한 눈빛 외에는 알록달록 화사하기도 하다. 이쯤 되면 까망씨를 놀려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떻게 까망씨의 약을 올려줄까? 칼데콧 수상작가인 데이비드 위즈너는 이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칼데콧 상 명예상을 수상하였다. 특유의 다양한 컷과 글 없는(여기선 조금 있지만.)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보다 좀더 역동적이라는 점이 새로웠지만 데이비드 위즈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할 작품일 것이다. 까망씨가 골탕 먹는게 이상하게 난 좋았다. 마치 거대한 권력을 약올리고 탈출한 느낌이랄까? 좀 삐딱한가?
장난감 우주선을 고쳐서 까망씨로부터 탈출하려는 이들이 외계인들이다 보니 자연히 외계어가 자주 나오는데 우리는 그것을 읽지 못하니 당연히 상상으로 채우게 된다. 아이와 여러 번 읽다보니 그 말들이 매번 바뀌기도 하거니와 점점 재미있어진다. 그림책을 사진찍어 종이를 붙여 외계말 번역(?)을 해보게 했었는데 다음에는 책에다 포스트잇을 붙여서 읽을 때마다 몇 몇 장면을 대사 꾸미기로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비룡소에서 제공하는 독후활동지를 잘 활용하는 편인데 이 책은 과연 어떻게 깊이 읽을 수 있을까 기대가 되기도 하였다.
며칠 전 엄마들과 어떤 책을 살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데이비드 위즈너의 책들이 거론되었었다. 그 전에 분명 읽었었는데 눈여겨 보고 있지는 않은 터였다. 또 얼마 전에는 칼데콧 수상작품 목록을 정리하는데 그의 이름이 보여 좀더 친근해졌었고 까망씨가 떠올랐다. 둔하게도 이 책을 받고도 이게 [시간 상자]의 데이비드 위즈너의 작품이라는 연결 고리를 퍼뜩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그의 이름을 여러 번 만나게 되니 또, 그의 작품이 얼마간 다양해진 것을 느끼게 된 터라 앞으로 더 관심을 갖고 그의 작품을 읽게 될 것 같다. 우연이 세 번 계속되면 인연이라는데, 까망씨를 매개로 좋은 인연이 되어 기쁘다.
골탕먹는 까망씨는 ‘톰과 제리’의 톰처럼 약자에게 당했지만 톰에게 느껴지는 측은함이 없다. 아마 까망씨가 새 장난감인 우주선 안의 외계인들의 탈출을 당하게 될 때에도 나의 통쾌함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 통쾌함이 현실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작은 장난감 속의 외계인들과 작은 곤충들이 힘을 합쳐 무기력한 까망씨에게 한방을 먹이고 유유히 웃으며 떠나는 그런 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