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출판사마다 공모전이 있다. 그 외에도 워낙 공모전이 많아서 서점에 나가보면 수상작이 너무 많은 요즘이다. 읽고 실망했던 적도 꽤 많았다. 하지만 믿을만해서 일단 찾아 읽는 곳도 있다. 창비어린이나 문학동네 어린이가 그렇다. 그리고 지난 해 부터 새롭게 생긴 비룡소의 스토리킹 수상작. 스토리킹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어린이 심사위원이 직접 수상작을 뽑는다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어린이책 공모전을 어린이들이 심사할 수 있다는 건 신선하면서도 어찌보면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지난 해에 아이들에게 수상작 <스무고개 탐정>을 읽어주었는데 인기가 대단했다. 2권은 나오자마자 방학 중인데도 내게 책이 나왔다며 알려주려고 전화를 한 아이도 있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방학전에 들린 아이들이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이 책은 스토리킹 올해 수상작이다. 일단은 믿고 읽었다.
책을 읽을 땐 맨 뒤나 맨 앞의 작가소개를 먼저 읽는다. 특이하지만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읽으면 글을 이해하기가 더 좋다고 해두자. (오랜 습관이니 어쩔 수 없다.) 이 책 역시 그랬는데 작가 소개를 읽고 나서 크게 놀랐다. 이 작가는 7월에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동화책 <삼백이의 칠일장>의 작가였다. 그 책은 문학동네 어린이 대상 수상작이었다. 내가 믿고 읽는 몇 안되는 공모전에 연달아 수상한 작가라니. 게다가 그는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부러움과 흥미로움이 더해지는 놀라움이었다. 삼백이는 역시 올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문학동네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나오는 저학년 동화 수상작이었고 게다가 전래동화여서 좋았는데 이야기의 소재와 도입이 훌륭했다.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던 건이라는 아이가 할머니의 죽음 뒤에 우연히 오방도사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평범한 초등학생 아이가 권법을 배우면서 겪게되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구성은 자연스럽게 흐른다. 다만 건이가 왜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되었는지, ‘비밀의 집’을 알게된 계기는 무엇인지 등 앞부분에 주인공인 건이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 좀 아쉽다. 뒷부분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모든 남자아이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권법이나 검법을 잘 다루는 아이. 하지만 놀라운 솜씨를 숨기고 평범한 아이로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굉장히 식상하고 뻔한 소재 일수도 있는데 이 작가는 분명 이야기꾼이다. 뻔한 소재에 어울리는 뻔한 등장인물인데도 그 인물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다루는 힘이 있다. 어느 인물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사연이 있지만 유쾌하고, 천방지축이지만 속이 깊고, 차갑고 냉정해보이지만 정의로우니 말이다. 또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권법들에 대한 설명들도 흥미로웠고 큰 이야기의 흐름속에 머니맨과 도꼬마리 열매 같은 작은 에피소드들도 재미를 더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주의 중심인 흙의 기운, 즉 나 자신을 믿는 ‘신(信)’의 마음가짐이다. _28쪽
오방구결의 내용중에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이다. 작가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가장 큰 메세지가 아닐까 한다. 작가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쳇바퀴 도는 아이들에게 무협동화를 통해서 해방감을 주고 싶었다는데 그 부분은 분명 성공이다.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을만하다. 뒷부분을 보니 2권을 염두해 둔 것처럼 보이는데 재미에서 나아가 수련이 더 깊어진 건방이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건방이가 아이들에게 재미 뿐 아니라 위로까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