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수 작가를 처음 만난건 아이 학교에서 열린 강연회 때문이었다. 작가의 강연회를 듣는다는 설레임에 그녀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가슴 아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그 또래의 아이를 가진 엄마이기에 그냥 덮고 ‘책 잘 읽었다~’로 끝낼 수가 없었다. 굉장히 매력적인 강사의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선 작가는 한 작품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 해주면서 완벽하게 등장인물화 된다는 이야기를 해줬었다. 책에 나와있지 않은 책속 등장인물의 버릇, 성장과정을 비롯한 모든것에 오롯이 동질화가 된다고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턴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녀가 얼마나 긴 시간을 책속 아이로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공감이 가곤 했다.
작가 소개글을 읽다보니 지금까지 500회 이상 전국 곳곳의 학교 현장을 직접 발로 누비며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성장통을 마음으로 껴안은 이옥수는 ‘학교 현장’의 러브콜 1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작가로서는 드물게도 중고등학교의 스타 강연자로 명성을 얻고 있단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청소년소설을 바탕으로 청소년소설 서사화를 통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고 되어있는데, 단 2시간 만난 이옥수 작가를 생각하면서 그녀답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리 많이 모이지 않은 중학생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회에서 그녀가 내뿝는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너무 좋아,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마음이 내게도 느껴졌으니 말이다.
‘파라나’. 도대체 이 뜻이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었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이 단어가 순우리말이라는 것을 책 소개를 보고야 알게되었다. ‘파라나’는 마음이 푸르러서 언제나 싱싱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이란다. 혹시 다른 책이 있나 찾아보니, ‘파라나’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책이 있다. 이 예쁜 말을 어찌 지금에야 알았을까? 청소년을 두고 하는 말이 ‘파라나’다. 읽으면서 이옥수 작가의 글 중 가장 유쾌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분명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름으로 인해서 ‘백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백정호는 겉으로 보기에는 유쾌한 아이였다. 책을 읽은 시점엔 그랬다. 리뷰를 바로 쓰지 않고 꿈지럭거리는 동안에 생때같은 아이들이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고가 일어났고, ‘파라나’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호는 뒷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열일곱의 정호는 참 멀리도 학교를 다닌다.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온 정호는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소년이다. 이 아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착하다’는 단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막연히 착한 아들,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모범생으로 칭찬받는 정호는 ‘착하다’는 단어를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와 동일어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정호의 블랙리스트 1호 경로당 홍 할아버지, 2호 야쿠르트 아주머니, 3호 아름슈퍼 김씨아저씨를 비롯한 경비 아저씨와 앞집 아주머니, 그리고 가장 위험한 전춘희 여사까지. 그들이 말하는 ‘착한 아들’은 정호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행위가 아니기에 정호는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 한다. 하지만, ‘착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정호가 원거리 고등학교를 일부러 택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정호에게 ‘착하다’고 할까?
착한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지만, 착하지 않은 정호가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인터넷뿐이었다. 정호가 좋아하는 예별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UT. ‘UT 안티카페’를 개설하고 UT의 팬들과 정면 승부로 날밤을 새는 정호. ‘복수의 전갈’과 ‘악마의 발톱’의 싸움으로 정호의 밤은 너무나 짧다. 이렇게 안티카페 속 정호의 위세는 드높아만 가지만, 밤을 세는것이 일상이 되어버리니 학교생활이 제대로 될이가 없다. 어딘지 모르게 정호가 닮은 듯하면서 너무나 당당한 효음. 매일 빵이나 사달라고 하고 빵셔틀도 당연하게 시키는 녀석이 정호옆에 찰싹 달라붙는다. 이녀석은 뭘까? 겉으로는 센척하지만 뭔가 불안한 것 같은 이 녀석은 왜 계속 정호옆에 있는 걸까?
‘누가 낳아 달라고 했냐고요. 팔을 못 써서 발길질로 자식을 수없이 짓이겨야 하는 아버지를 원한 적 없다고요. 두 다리가 있어도 남들처럼 걷지 못하고 양 옆으로 돌아간 발로 절룩거리는 어머니를 원한 적 없다고요.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왜, 왜요, 왜 나만 이렇게…’ (p.246)
정호의 부모님이 학교를 찾아오면서 정호가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드러나버렸다. 몸이 안좋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다니던 어린 정호는 그때부터 ‘착한 아이’, ‘착한 아들’이 되어버렸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꼬리표가 달라붙었는지도 모른다. 전춘희 여사의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라는 말로 시작된 아들 자랑은 학교에서도 이어졌고, 정호는 학교에서 효행 대상 수상자로 지목되어 상을 받게 된다. 절대 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정호는 이 상이 너무나 싫다. ‘왜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난, 심청이가 아니니까. 정호는 아프게 상패와 상금이 든 봉투를 움켜쥐었다.’ (p.197). 상이라고 모든이에게 다 좋은것은 아니다. 심청이가 되기를 몸부림치면서 거부하는 아이에게 심청이가 되도록 강요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분명 상을 주는 이는 선한 마음이었겠지만,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준 것일까?
정호는 아픈 아버지와 함께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효은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고, 효은은 정호를 통해서 과거에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아픈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표면적으로 웃는다고 웃는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보여 주는 눈이 아닌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은 정호의 마음 속 갈등은 결국 효행상을 반납하기에 이른다. 세속적이기에 책을 읽는 나는 상금이 아까웠다. ‘파라나’에게 상금은 블랙리스트들이 ‘착한 아이’에게 주는 요구르트나, 선물과 별만 다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정호의 부모는 정호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동조해준다. 정호의 선택에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 하는것이 아니다. 나 역시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들이 만들어준 허울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찾으려 노력하는 열일곱, 멋지지 않는가? 마음이 푸르러서 언제나 싱싱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이인 ‘파라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