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시계가 쿵!
이민희 글/그림
비룡소 창작 그림책 – 030
40쪽 | 396g | 232*242*10mm
비룡소
이 책을 읽고 나서 제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방학시작과 함께 이 책을 읽었던 탓(!)이지요. 방학을 시작하면서 밤톨군 녀석과 하루의 일과에 대해서 이야기 한 참이었거든요. 밤톨군과 12시간에 대한 원을 그려 만드는 전통적인 생활계획표를 만들어볼까 하다가 학기 중에 하던 「방과후 활동」과 새로 추가된「방학특강」이 방학으로 연결되면서 하루하루가 똑같지 않다는 것 때문에 만들지 않기로 했었습니다. 대신 요즘들어 자꾸 깜빡거리는 제 기억력 때문에 저는 스케쥴 표를 만들어야 했지요. 정기적인 시간에 가는 학원이 많지 않았는데 방학동안 체력보강을 위한 ‘줄넘기’ 와 ‘수영’ 이 시작되면서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었죠. 방학이 2주정도 지난 지금도 아침마다 들춰봐야 할 정도로 영~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마치 헬리콥터맘처럼 아이의 스케쥴을 짜놓고 보니 밤톨군 녀석은 친구들과 놀려고 놀이터로 뛰어나가다가도 엄마와 시간을 확인하고 나가야 합니다.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OO 있는 날이죠? 라고 확인하기도 하죠. 엄마의 계획표를 어깨너머로 본 녀석은 자신의 수첩에 하루계획을 적어놓기도 합니다. 계획적인 모습이 앞으로 습관이 들어야 하니 흐믓하다가도 한켠으로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림책을 읽고나서는 더욱 그랬죠.
2006년 『라이카는 말했다』,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로 한국안데르센상 대상을 수상한 이민희 작가는 그동안 현대 문명을 풍자하는 독특한 시선을 작품에 담아내 왔습니다. 이 책에서도 변함없이 동물세계에 우리의 모습을 빗대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막 스케쥴표를 작성완료한 엄마로서의 제 마음이 뜨끔해질 정도로 말이죠.
<책속으로>
드넓은 초원에 커다란 돌기둥이 쿵! 떨어졌습니다. 한가롭던 초원이 시끌벅적해졌죠. 사자는 그냥 돌기둥일 뿐이라고 했고, 원숭이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합니다.
한참을 지켜보던 원숭이는 그림자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발견합니다. 원숭이는 그 현상을 이용하여 돌시계를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원숭이의 생각은 아주 멋졌어요.“. 동물들은 돌시계를 보며 약속을 정하니 참 편하고 좋았죠.
원숭이는 돌시계를 더 잘 쓰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시간표를 만들자고 하죠. 동물들은 시간표에 따라 규칙적인 하루를 보냅니다. 동물들은 모두가 똑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돌을 가져다 놓게 됩니다. 똑같은 시간에 모여 밥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놀고, 춤을 추고 노래하죠.
그런데 정해진 시간안에 식사를 마치지 못한 사자가 화를 내며 돌기둥을 무너뜨려버립니다. “돌기둥이 나의 하루를 조각조각 뽀개 버렸어! ” 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시계가 없어도 살 수 있다며, 나만의 하루를 되찾겠다는 동물들과 시계가 없으면 하루가 엉망이 될 거라는 원숭이들이 대립합니다. 그리고 결국 원숭이들이 돌시계를 들고 초원을 떠납니다.
원숭이들은 돌산에 돌시계를 세우고 ” 돌시계에 맞춰 하루를 살아갑니다. “.
아이들은 책 속 이야기를 통해 시간의 개념과 시간의 흐름, 쪼개어 사용할 수 있는 속성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림책 속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서 서글퍼졌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직장 등 모든 사회 내에서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하루를 요구받고 있는 우리 인간의 현실을 꼬집는 듯 한 그림.
밤톨군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진화’ 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구나~~” 라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돌시계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동물들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작가가 던지고자 한 질문… “모두가 똑같은 시간에 맞춰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 라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초등 1년생이네요. 녀석과 함께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시계가 없으면 하루가 엉망이 될 것이다” 라는「시간의 효율성과 사회적 규칙을 중시하는 의견」과 “나만의 하루를 되찾겠다.” 라는 「개인의 개성과 기호를 존중하는 의견」이 대립되는 갈등 상황에 대해 언제쯤 생각을 나눠볼 수 있을까요. 온라인서점의 권장연령이 4-6세로 되어있지만 담겨있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면 작가의 다른 전작들처럼 그 이후 아이들에게도 생각거리를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녀석의 다시 생활계획표를 들여다보며 생각합니다.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해야할까? 학교 끝나고는 오히려 마음껏 놀게 해주다가 오히려 ( 남들은 여유롭게 보내는 ) 여름방학부터 계획적인 시간을 보내고자 시도해본 것이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비록 밤톨군이 배우고 싶어했던 수영이나 로봇과학 등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말이죠.
그나저나, 출판사의 책소개에 보면 “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한 그림 속에는 앙리 루소의 명작을 패러디한 장면들도 숨어 있다” 고 하는데 어떤 장면일지 한참을 노려보아도 모르겠습니다. 앙리 루소의 정글 그림들 중의 하나일까요? 그림책 속 원숭이들이 따먹는 과일 모습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의 해의 느낌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앙리 루소 그림을 몇 점 가져와 봅니다.